UPDATED. 2024-04-26 14:11 (금)
[이효연 원장의 생각] 어쭙잖은 민주주의론
상태바
[이효연 원장의 생각] 어쭙잖은 민주주의론
  • 이효연 원장
  • 승인 2019.10.02 1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치과 이효연 교정원장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호랑이를 죽인 사냥꾼의 용맹함은 칭찬 받는다. 하지만 호랑이를 죽이는 살생의 죄를 범한 사냥꾼의 행동은 정말 정당한 것일까?

호랑이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면 사냥꾼은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 살생을 하지 않았고,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은 것은 죄가 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능력이 있으면 사람은 당연히 호랑이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 왜 그럴까? 사람은 죄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도덕에 의해서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가족을 버려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조국과 민족 대 가족.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감정적으로는 가족이 우선이지만, 역사에는 조국과 민족을 선택한 예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대부분 애국자로 칭송 받는다. 도덕적 갈등은 이럴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도덕의 잣대를 결정하는 데에도 다른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을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에 따라서 도덕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도덕적 판단은 가치의 우선 순위에 따라 결정되며 어떤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우선 순위를 두느냐에 따라서 도덕적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가치관에 따라서 도덕적 판단이 달라진다면 죄와 벌을 정하는 법은 어떤 것일까?  동일한 도덕적 판단이 일관되게 작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도덕적 판단을 강제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 지점에서 법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즉 법은 도덕적 판단을 바탕으로 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의 뿌리는 도덕이고, 한 발 더 나아가면 법의 뿌리 역시 가치관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자.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 즉 법문으로 정의돼 있는 것으로 모든 권력이 왕과 국가에 있었던 전제 왕권을 타파하고 나온 새로운 개념이다.

전제 왕권과 민주주의가 법으로 정의된 것이라면 그것들 역시 가치관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전제 왕권과 민주주의는 어떤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일까?

전제 왕권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말 중에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단어는 忠, 孝, 禮 이니 그것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왕 또는 국가에 대한 忠, 그것의 작은 형태로서 나타나는 부모에 대한 孝, 그리고 상호 간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 禮. 이것들이 전제 왕권을 떠받치는 가치관이었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전제 왕권을 깨뜨리고 나왔다. 전제 왕권은 왜 깨졌을까? 그것은 독점화한 권력에 의해서 개인이 핍박 받았기 때문이다. 개인은 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전제 왕권의 권력을 깨뜨리고 자유를 얻었고, 그렇게 찾은 민주주의의 법적인 표현은 바로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다’가 된 것이다. 그러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치관도 전제 왕권의 가치관인 忠孝禮와는 당연히 달라야 한다.

민주주의의 가치관을 충효예의 관점에서 살펴보자. 국가 또는 왕에 대한 忠은 이미 민주주의의적 가치관이 아니다. 孝 역시 忠의 축소된 형태임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되지 못한다. 즉 독점화된 권력 또는 권위에 대한 복종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치관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禮는 상호 간의 존중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민주주의 권력의 근간인 개인의 자유를 높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될 수 있다.

忠과 孝가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될 수 있으려면 禮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면 되지 않을까? 즉 국가와 국민이 상호 존중하는 과정에서 발휘되는 忠이라면, 다시 말하면 국가는 국민을 존중해서 그 권력을 인정하고, 국민은 국가를 존중해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는 관계로써의 忠이라면 민주주의적 가치관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孝 역시 비슷한 과정으로 다시 정의하여, 자식을 존중하는 부모와 부모를 존중하는 자식의 관계로 바꾸면,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적 가치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자.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가치관은 바로 개인의 자유이고, 개인의 자유는 상호 존중 받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만약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기로 결심했으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무시하는 모든 권력 또는 권위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 사회에 산다는 것은 허울 좋은 거짓일 뿐이다. 자유롭고 싶으면 권위를, 독점화된 권력을 받아들이지 마라.

끝으로 한 가지 더. 그럼 전제 왕권의 가치관은 무엇이었을까? 충효예를 예로 들었었지만 그 근본은 권위에 대한 복종, 특정인 또는 특정집단만의 자유가 아니었을까? 만약 어느 누군가가 자신만의 자유를 추구한다면 그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는 왕이 되고자 하는 것이고, 민주주의 사회에는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진정 상호 존중하는 개인의 자유를 근본적 가치관으로 삼고 살고 있는가? 언론 권력, 정치 권력, 금권 등등… 권력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늘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