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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에세이] 들숨과 날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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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에세이] 들숨과 날숨 이야기
  • 윤미용 기자
  • 승인 2012.09.27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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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호흡이 안 되서 뇌에 산소공급이 끓기면 뇌사에 빠진다. 죽고 사는 것을 결정하는데 5분 밖에 안 걸린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호흡에 대해 의사조차도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인류역사에서 호흡에 대한 정립은 힌두교의 요가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현대의 요가는 종교적, 철학적 근간을 상당 부분 무시하고 기교적으로 흐르다 보니 그 부작용들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이 숨만 잘 쉬어도 건강과 번뇌를 소멸한다고 한다. 한번 시도해 볼만하지 않는가?
계의비두(繫意鼻頭), 의식을 코끝에 묶어둔다는 뜻이다. 즉, 콧구멍으로 숨(息)이 드나드는 것을 의식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는 심식상의(心息相依)의 첫걸음이다. 또 생각과 호흡이 하나로 되는 것을 안반수의(安般守意)라 한다.
호흡은 고삐와 같아 고삐를 당기면 망념도 잦아든다. 이 호흡의 수련으로 초선의 경계로 들어설 수 있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말한다.
“신체의 들숨과 날숨을 하나하나 관찰하여 모두 다 인지해야 한다(盡觀身體入息出息, 皆悉知之)”
정좌 시 들숨과 날숨을 모두 알게 되면 기억력이 대단히 좋아지며 머리가 영민해진다.
잠을 자면서도 호흡에 주의해야 한다. 일상생활이 바빠 피곤할수록 정좌(타좌)를 하여 기(氣)를 가라 앉혀야 한다. 한 시간 정도 투자하면 된다.
노인이 식(息)을 수련하면 양기(陽氣)를 회복할 수 있으며, 병자라도 병이 치료되어 장수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산란하면 호흡은 어지러워지며 마음이 고요하면 호흡 역시 고요해진다. 들이쉬지도 내쉬지도 않을 때 비로소 식(息)이라 할 수 있다.
현대 과학에서도 인체가 빛을 뿜을 수 있다고 한다. 기식(氣息)이 정지되면 그 빛은 훨씬 강하여 설혹 귀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두려워 숨어버린다.
기식(氣息)이 정지되어야 비로소 명예나 이익, 재물, 음식, 수면 등에 대한 대승적 욕구와 성욕과 같은 소승적 욕구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초선의 경지(해탈)이다.
하단전을 수련할 때 들이쉬는 숨은 가늘고 길며 천천히 하며, 내쉬는 숨은 빠르고 짧고 급하게 하며, 다 내쉬고 나면 바로 이어서 들이쉬는 것을 안다.
청식(聽息) 시 호흡 소리를 듣는 것인데 정(定)공부가 된 사람은 아주 시끄러운 곳에서도 자신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달마도사는 계단아래 개미가 싸우는 소리가 청력벽력 소리와 같이 컸다고 하였다.
청식(聽息)공부를 하면 처음에는 맥박이 뛰는 소리가 들리다가 나중에는 심장에서 혈액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정(定)의 수련이 된 사람은 신체의 소리만 듣고도 몸의 이상을 알 수 있다.
수식(數息)을 하다가 잡념이 들면 다시 수를 세기 시작해야 한다.
육방옹은 “한번 앉으면 천 번의 호흡을 센다”라고 하였다.
영양이 과다하고 혈압이 높고 욕정이 왕성한 사람은 내쉬는 숨을 세고, 신체가 허약하고 혈압이 낮고 신경쇠약이 있는 사람은 들숨을 세야 한다.
건강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사람은 오전은 날숨을 오후는 들숨을 세면된다.
이 기식(氣息) 수련이 잘 되면 몸 내부의 기가 충만하여 내부의 빛으로 밤에도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이 수련의 성취를 이룬 자는 매우 낙관적이며 근심과 번뇌에서 해탈한다.
배가 부를 때는 소화를 시켜야 하므로 기공을 해서는 안 된다.
“정(精)이 가득하면 음란한 생각이 들지 않고, 기(氣)가 가득하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며, 신(神)이 가득하면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精滿不思淫, 氣滿불思食, 神滿不思睡)”
신(神)이 가득한 후에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언급하는 것이 옳다.

 

 

대한치과보철학회 유동기 공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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