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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없는 응급법 시작부터 ‘삐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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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없는 응급법 시작부터 ‘삐걱’
  • 김정교 기자
  • 승인 2012.08.14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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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처분 3달 유예 임시방편 불과 … 치과응급의료체계도 혼선 오나

 

레지던트가 병원 당직전문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개정 응급의료법이 5일부터 시행되자 의료계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더구나 개정법에는 응급의료기관에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당직전문의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대로라면 치과도 관련전문의로 당직의사를 배치해야 하겠지만 보건복지부는 치과의 경우 △수련병원이면서 △세부 진료과목에 치과 전문과목을 표방하고 △전문의가 있는 경우에만 당직의사를 배치하면 된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의료계가 혼란스러워하자 과태료 등 처벌규정 적용을 11월 4일까지 3개월 동안 유예하는 등 긴급 보완책을 내놨다. 그렇지만 응급실 현장의 혼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응급환자 적정진료 위해 개선
개정법에서는 환자가 보다 빠르고 적절한 응급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공휴일과 야간에 환자가 오면 응급실 근무의사가 1차적으로 진료한 후 타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치과를 포함하는 당직전문의에게 응급환자 진료를 요청(On Call)토록 했다.

복지부는 이 과정에서 종전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에 의한 진료 단계가 사라져 타과의 진료가 필요한 중증응급환자가 보다 신속하게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또 응급실 근무의사가 당직전문의에게 응급환자 진료를 요청했음에도 당직전문의가 응급환자를 직접 진료하지 않을 경우 해당 응급의료기관에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해당 당직전문의에게는 근무명령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면허정지 처분이 내려진다.

아울러 당직전문의를 두어야 하는 진료과목을 응급의료기관에서 개설하고 있는 모든 진료과목으로 확대함으로써, 다양한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가 가능하게 됐다고 정부는 밝혔다.

또한 당직전문의에 의한 신속한 응급환자 진료를 위해 응급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비상호출체계를 구축토록 했으며, 응급환자 또는 환자의 보호자는 응급실 내부에 게시된 당직전문의 명단을 통해 해당 진료과목의 당직전문의 확인이 가능토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1995년부터 관련법을 통해 응급의료기관이 공휴일과 야간에 언제든지 진료할 준비체계를 갖추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전공의가 진료를 하거나, 전문의가 전화로 처방을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8월 4일 공포됐다”고 설명했다.

전문의 1∼2명이 365일 진료?
이와 관련, 대한병원협회는 2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전국 458개 응급의료기관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응급실 비상진료체계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에 대해 공휴일 및 야간 당직전문의를 편성하도록 규정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안”이라며 비현실적인 응급의료법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들은 “개설된 모든 진료과목마다 당직전문의를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응급환자가 주로 발생하는 진료과 위주로 개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찰병원 관계자는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2명인데 낮에 근무하고 야간과 주말까지 당직 콜에 대기하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또한 규모가 작은 응급의료기관 관계자들은 “과목별로 전문의가 1∼2명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실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소아의 경우 체온이 38℃ 이상이면 모두 ‘응급환자’로 분류하게 돼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응급환자 분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부산의 한 참석자는 “전문의가 콜을 받고 오는 동안 병동 레지던트가 진료를 하면 면허 또는 자격을 취소하거나 정지토록 했다”며 “생명이 위중해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를 병동에 근무하는 레지던트가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현행 법안은 환자 진료에 해를 주는 악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구성자 복지부 응급의료과 사무관은 “응급의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의사인력 기준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해당 응급의료기관의 장이 응급실 근무명령을 내린 ‘응급실 근무의사’는 전문의·전공의(인턴·레지던트) 등의 구분 없이 근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상석 병협 상근부회장은 “응급의료법에 따라 지정된 응급의료기관은 여건에 맞는 ‘비상호출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해야 한다”며 “비상호출시스템 구축비용은 응급의료기관 평가결과에 따라 국고보조금에서 집행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행정처분 3개월 유예키로
병협이 주최한 설명회에서 일선 응급의료 담당자들의 성토가 이어진 이후 복지부는 당직전문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개정 응급의료법은 5일부터 시행하되 행정처분은 11월 4일까지 3개월 유예키로 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당직전문의를 배치하지 않은 응급의료기관이나 당직의사가 온콜을 했을 경우 당직전문의가 이에 응하지 않더라도 오는 11월 4일까지는 과태료 200만원 또는 면허정지 처분 등이 내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 내 응급의료체계 및 병원 간 후송체계 구축을 위한 준비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며 “이 기간 동안 응급의료기관들은 각 병원에 맞게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의료계는 “당장 혼란은 피하겠지만 논란은 여전할 것이며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응급의료법이 응급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적시에 받도록 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라면 실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주변 조건을 정비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1∼2명에 불과한 전문의가 365일 주야로 환자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일선 응급의료기관의 당직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응급환자와 비응급환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방안이 있어야 한다. 소아청소년이 38℃ 이상이면 무조건 응급환자라는 규정이 의학에 맞는지, 아니면 수개월까지의 유아에만 적용해야 하는 것인지, 세세한 부분에서의 검토가 필요하다. 행정처분 3개월 유예로 가능한 일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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