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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권 원장의 BMS]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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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권 원장의 BMS]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것
  • 차상권 원장
  • 승인 2014.06.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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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민케인』·소설 『장미의 이름』

 

대저택 제너두(‘이상향’을 의미한다), 한 사내가 쓸쓸히 삶을 마감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눈 덮인 작은 오두막 모형이 들고 있는 수정 구슬이 들려있다. 이 남자는 ‘로즈버드’(장미꽃 봉우리)라는 수수께끼같은 한 마디를 남기며 숨을 거둔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언론 대부호 케인의 사망과 그가 남긴 미스터리한 짧은 유언, 많은 사람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로즈버드의 존재와 의미를 찾아 나선다. 한 신문기자 톰슨에게 주어진 일도 그런 것이었다. 톰슨은 ̒로즈버드̓를 찾기 위해 케인의 지인들을 인터뷰하며 그의 삶을 조명하게 된다.

̒로즈버드̓는 과연 무엇인가,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시민케인(1941)̓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영화라는 장르가 만들어진 이후 수도 없는 영화들이 세상에 펼쳐졌지만, 20대 초반의 오손웰스가 대본,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시민 케인은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고 있으며, 많은 영화를 가르치는 대학,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과서 같은 영화로 활용되고 있다.

이야기 속 이야기가 펼쳐지는 액자식 구성, 연극의 연출기법을 영화에 도입한 미장센, 구도나 명암, 대조를 활용한 촬영 기술은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후학들도 자신들이 영화에 감독 오손웰스에 대한 오마주를 기꺼이 담아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

현존하는 천재 중의 천재로 꼽히는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대중들에겐 소설가로 더 알려져 있는데 대표작 『장미의 이름(1986년)』은 14세기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의 7일간의 연쇄살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막대한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고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불리는 이 수도원에 수도사들이 계속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손가락과 혀가 검은색으로 변한 상태로 발견됐으며,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의 예언처럼, 악마의 짓이거나 신의 징벌이라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편 교황청에선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윌리엄 수도사를 파견한다.

소설『장미의 이름』은 이성과 종료, 이 두 가지 대립하는 관점을 통해 스토리가 흘러간다. 신에 맹종하는 성직자들의 사고와 이성과 합리를 중시해 과학적 사고로 사건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윌리엄 수도사의 끊임 없는 대비를 통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까지 저자 특유의 현학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미스터리(추리) 소설로 분류될 수 있지만 시대적 조명과 함께 많은 철학적 지식 등의 지적 요소들이 담겨있다.

살인사건의 진실 역시 이러한 이유였다.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권』을 숨기기 위한 수도사가 꾸민 일이었다. 이 책은 ̒웃음̓이란 것이 사람의 순수하고 당연한 마음이며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신에 대한 두려움, 경외심을 약하게 하고, 수세기 동안 형성된 기독교적인 질서를 파괴한다고 생각해, 책에 독약을 묻혀 놓았던 것은 신에 대한 그릇된 맹종의 결과였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 『장미의 이름』이 뜻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시 영화 ̒시민 케인̓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보자. 톰슨 기자는 결국 로즈버드의 존재를 찾는 데 실패한다. 케인을 알고 있던 그 누구도 ̒로즈버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기자가 저택을 떠나고 경매나 박물관에 갈만한 수준이 아닌 물건들은 벽난로 속에 던져지게 되는데, 여러 물품 중에는 낡고 낡은 눈썰매 하나도 포함돼 있었다.

카메라는 점점 타들어 가는 눈썰매를 천천히 클로즈업해주는데, 썰매 한가운데에는 장미꽃 문양과 ̒로즈버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케인이 남긴 마지막 말 ̒로즈버드̓는 눈 덮인 오두막집에서 자란 어릴 적 어머니가 만들어준 눈썰매를 뜻하는 것이었다.

소설 『장미의 이름』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윌리엄 수도사의 어린 제자 아드소가 수십 년이 지난 후 이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살인사건에 스승과 함께했을 때 10대 소년이었던 아드소는 스승의 뒤를 이어 수도승의 길을 걷는 것을 선택한다.

존경했던 스승의 안식을 기도하며 그의 지적 호기심에 대해 신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언급한 영화 ̒시민케인̓과 소설 『장미의 이름』은 연관성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시대적 배경, 사건의 전개방식도 다르다. 오히려 두 주인공 사이에서 절묘한 대비가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삶과 입은 옷마저 주님의 것이라고 믿는 청빈한 수도자의 삶의 참으로 판이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 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떠오르는 순간들 그리고 끝까지 기억 또는 갖고자 한 가치들에는 공통분모가 숨겨져 있다.

먼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것이라면 분명 소중한 것일 텐데 정작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케인이 말한 ̒로즈버드̓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결국 불에 태워지게 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톰슨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어. 그리고 잃었지, 어쩌면 로즈버드는 그가 잃지 않은 그 어떤 것일지도 몰라”

케인에게 있어 그가 가장 갈망했던 것,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사랑과 기억이 편린들이었다.

예전에 사람의 마지막 순간에는 세 명의 얼굴과 그 사람과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영화 ̒대부 3(1990)̓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마이클 꼴레오네의 마지막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평생을 살면서 사랑했던 3명의 여자와의 춤을 추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자신이 그렇게도 아꼈던 딸, 그리고 자동차 사고로 숨진 시실리 섬의 시골 아가씨, 그리고 이혼할 수 밖에 없었던 부인과의 춤이 그것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늙은 수도사가 잊지 못하는 기억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언젠가 찾아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리워하거나 그 순간조차도 기억하고 가져가고자 하는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시선을 현재로 가져가 보았을 때 무엇을,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이 두 편의 영화와 소설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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