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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7] 일본의 性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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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7] 일본의 性문화2
  • 안승호 원장
  • 승인 2013.09.26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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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盜二婢三妾四妓五妻 잇토 니히 산쇼 시기 고사이.
첫 번째는 남의 부인, 두 번째는 하인, 첩, 기생, 마누라 순이라는 일본애들 얘기입니다.

 

각 항목의 미(味)를 서술한 내용을 보면 <상급 유녀; 도미. 서민으로서는 손도 닿을 수 없다. 유곽의 창부; 가다랑어. 고급 저급이 모두 있어서 쉽게 맛볼 수 있다. 길거리 창부; 고래같은 맛. 풍미가 깊다. 하녀; 정어리 같은 것. 맛은 좋지만 품격이 없다. 첩; 피조개 같은 것. 임신하여 아이를 낳으면, 바로 맛이 없어진다. 미혼 일반 여자: 금붕어. 확실히 응응 상대로서는 좋다. 아내; 가다랑어포 같은 맛.  그다지 맛있지는 않지만 싫증나지 않는다. 남의 부인; 복어같은 것. 맛은 좋지만 자칫 생명이 위험해진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일본의 성문화가 우리와 많이 다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궁금했었지만 대강 보니 걔네나 우리나 다 사람 사는 데고 그리 크게 다른 것 같지도 않더군요. '요바이'는  밤에 남자가 애인 침소에 숨어들어가서 정을 맺던 일. 농가나 어촌 등의 풍습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인들의 혼전 순결 무개념을 비아냥 거릴 때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요바이' 라는 단어다.

‘일본 여자 애들은 결혼 전에 여러 남자와 요바이하는 게 기본이야’ 이런 식의 얘기 들어 보신 적 없나요? 우리도 조선 후기에 들어와 유교가 전 국민을 의식화시키기 전에는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비아냥거릴 처지는 못되더군요. 인심 좋은 아줌마 동네 서방이 열 명, 이건 우리네 인지상정이였고,  오히려 조선의 경우 사랑채와 안채가 구별되면서 남녀유별이 강조되자 안채는 금남(禁男)의 구역이 되어 버려 돌쇠가 당당히 마님과 응응 하고 가도 되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죠.


일본 에도에서의 하급 성문화란 사정(ejaculation)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요. 섹스의 끝은 사정이 당연한 것이지만 이모저모 살펴보면 안스럽기도 해요. 각기 고향을 떠나 에도에 머물던 남자들은 단체로 합숙소 같은 곳에 머물렀어요.


예를 들면 구주(쿠우슈우)의 싸쓰마번에서 올라온 사무라이들은 싸쓰마번 번주가 에도에 소유하고 있는 건물에 합숙을 하죠. 사무라이들은 각기 타고난 계급이 있어요. 영관급 사무라이, 위관급 사무라이, 하사관급 사무라이 등등 타고난 신분에 따라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었죠.


특히 에도(동경, 막부 정부가 소재한)같은 중심 도시에서 싸쓰마번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주군에게 누를 끼치는 불충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합숙 생활은 규율이 엄격해 저녁 점호 후 외출은 엄격히 제한 됐고, 근무 중인 낮에 어떻게든 응응을 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에도의 화대는 낮엔 비쌌고 밤엔 저렴했다.

세상 모든 일은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 한창 때의 젊은이들에게 금욕과 절제를 강요하는 것은 반인류적인 어리석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 나이에 성적 욕망이 솟구친다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고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데 그걸 못하게 하다니. 청춘의 피가 끓는 것은 성적 욕망으로 표현되던지  청춘 예찬식으로 나타나든 어떤 식으로든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입니다.


고급 유곽에서 기생을 끼고 논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였고 가격도 높았어요. 길거리 창부와 돗자리 위에서 응응 하는 가격은 대게 메밀 한 그릇 가격이였지만, 고급 기생의 화대는 그에  약 300 배 정도 높다고 합니다.
요즘 한국의 화대로 말한다면 지방 늙은 창부가 4~5만원이라고 본다면, 서울  텐프로는 그에 한 30 배 정도 높지 않을까 싶군요. 빨리 응응을 하고 숙소로 귀환해야하니 찻집 식당 여관 등은 뒷방마다 수요에 따른 공급이 있었다. 우리처럼 허릿대 확 풀러놓고 앗싸하게 노는 식보다는 밥 먹다가 차 마시다가 걍 후다닥 Ejaculation하고 숙소로 귀환해야 했다. 여러 이유로 손님을 받지 못하거나 싫은 경우 유녀들은 허벅지 사이에 로션을 바른 후 남성의 성기를 자극하는 테크닉이 이용되기도 하였다네요. 예전에 터어키탕에서 사용되던 방법이죠, 이게 또 중독성이 있다는. 로션이 없어 주로 침을 이용했다는.


일본 유녀들이 특이했던 것은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풍습인데 이게 못생기게 하여 적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인 줄 알았는데 유녀들까지 했다는 것은 나름 까만 치아가 성적 흥분을 시키는 요인이 있나봐요, 해봐야쥐~.


중국의 전족 풍습도 거의 변태적 행위였는 줄 알았더니 이유가 있었으니 '까만 치아'도 분명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거에요. 전족을 하여 여자가 기우뚱 걷다가 보면 여성의 성기가 착 달라붙는 방향으로 발달을 한다는군요.

그렇다면 '까만 치아'는 어떤 까닭이 있을까. 여성의 명기에 관한 이야기는 동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하네요.


서양애들 성인물 소설에서는 여성 명기에 관한 얘기가 없다고 해요, 만일 명기라는 것이 없는 것이라면 전족 또한 허상 속에서 여성들을 병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인 거에요. 서양인들이 처음에 일본에 와서 의아해했던 것들 중에 유곽들이 고급스러웠다는 것과 이들 유곽이 대게 사원의 문 앞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신사나 절 앞에 유곽이 있었다는 말인데요, 여기서 일본인들이 종교와 성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어요.


일본에 불교가 전래될 때 기존의 무속신앙 세력과 선진 불교 세력은 죽기 살기로 싸웠어요, 이건 뭐 어느 나라나 다 있었던 일이고. 이 당시 일본의 지도자였던 쇼토쿠 태자가 “어차피 사람을 위한 종교인데 무엇을 믿으면 어떻단 말인가, 둘 다  믿도록 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 태자의 말에 많은 일본인들은 공감을 하고 있다고 해요. 현명하죠? 크리스마스에도 놀고 석가탄신일도 노는 거에요. 그저 즐거운 날일뿐이죠.
절이나 신사 앞에 유곽이 있는 이유는 ‘性은 신성하니까’ 라는 말로 웃으며 답하는 게 일본인이라는 거죠. 신사나 절 참배객이 이용했을래나, 스님이나 신사 관계자가 주고객이였을까, 이걸 문제 삼지 않는 사람들. 그게 뭐 어떠냐는 거에요.


性을 상품화하여 거래하는 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온 당연지사입니다. 하루를 거래할 수도 있는 거고 십 년 이 십 년 평생을 거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너를 독점하는 대신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 라는 결혼도 따지고보면 거래니까요. 메밀 한 그릇 값보다는 더 가져다 줘야 그닥 맛은 없지만 질리지 않는 거라도 대접 받겠죠.


<大江戶八百八町의 性生活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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