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3 17:37 (금)
[에스프리 산문집] 모래글씨의 사랑
상태바
[에스프리 산문집] 모래글씨의 사랑
  • 차현인 원장
  • 승인 2015.09.17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그릇

 

차현인(여의도백상치과) 원장

 


시간의 그릇

세상을 살다보면 신기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서 예상 가능한 일처럼 둔갑하기도 하고, 예상되는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아서 우리의 ‘예상’에 대한 믿음을 고사(枯死)시켜 버린다.

그는 이런 점이 인생을 더 우아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약간 퇴폐적인 생각을 하고 이를 스스로 비웃으며, 카페 파스쿠치의 빨간 테이블 한 구석에 앉아 있었다.

왁자지껄한 젊은 남녀가 주문대 앞에서 메뉴판을 보고 있다. 지금은 저렇게 비싼 음료들을 프리미엄 카드로 마음껏 긁고 손톱 끝으로 대충 서명하며, 카드기가 내뱉는 길다란 영수증을 착착 접어 코우치 지갑에 자신있게 끼워넣고 있지만….

 

4살 가량의 여자 아이를 굵은 팔로 안고 옆에 30대의 파릇파릇한 아내를 대동한 채, 유유히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덩치 좋은 남자의 표정엔 생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그 사랑스런 아이가 앞으로 부딪힐 치열한 경쟁의 벽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듯이.
 돈이 부서지든지 젊음이 부서지든지 그런 건 남의 일이라도 되는 양.

 

“진저트위스트를 가장 맛있게 마시는 방법: 20분간 천천히 들이킬 것”
티백 손잡이에 깨알같이 인쇄된 글씨가 찻잔 앞의 그를, 그의 정지된 현재를 왠지 품위있게 치장한다.
허나 그 현재의 크기는 딱 20분일 뿐이야….
그는 진저트위스트의 마지막 한 모금, 그 예상된 차가움을 마악 들이켰다.
오늘의 신기한 일은 이것으로 끝난거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