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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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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3.07.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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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배로 불어나는 연(蓮)잎 하나가 연못의 절반을 채우는데 29일이 꼬박 걸렸다. 그러면 이 연못을 가득 채우는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일까? 하루.

간단한 수학퀴즈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현실에서 겪는 상황은 다르다. 그 연못을 관리하는 사람은 처음 며칠 동안은 연잎을 인지하지도 못하기 마련이다.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면 24일째가 되어도 시간적으로는 30일 중에 80%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연잎은 연못의 1%가 좀 넘는 수준이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절반쯤 덮었다고 인식하는 29일째가 되어도, 바로 그 다음날이 연못이 다 덮이는 최후의 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기존 29일 동안은 그래도 괜찮았고 게다가 아직 절반이나 남아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 연못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연못이 다 덮이는 최후의 순간 같은 건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에이 설마 정말 그럴려구.

현실에서 시간은 선형적으로 흘러가지만 실제 상황들은 복잡하게 얽혀서 기하급수적으로 문제가 증폭되기 마련이다. 갇혀있는 생태계의 종말이자 인류 문명사회의 종말의 대표적 사례로 유명한 이스터 섬의 경우도 그러했다.

커다란 모아이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 섬은 본디 야자수를 비롯한 온갖 나무들로 우거진 생명이 넘치는 섬이었다. 숲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야생 조류와 동물들, 나무로 배를 만들어 고래잡이도 하면서 그 섬의 원주민들은 풍요로운 사회를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의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각 부족이 경쟁적으로 제작하는 광풍이 섬을 지배하게 되어버렸다.

모아이 석상을 만드는 소모적인 경쟁을 통해 삼림의 무분별한 벌채가 이루어졌고 이는 사냥, 고래잡이 등 섬사람들의 경제적 기반을 무너뜨릴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 수백 년에 걸친 변화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삼림의 벌채라는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못하고 부족 간의 전투와 소모적인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섬에 나무가 한 그루도 남지 않게 되고 원주민들의 문명은 쇠퇴하여 인육 풍습까지 등장할 정도로 섬이 흉흉해지기에 이르렀다. 훗날 서양인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발견했던 것은 과거의 비옥했던 섬이 아닌 빈곤하고 황량한 불모지였을 뿐이다. 

1995년 Discovery지에 Jared Diamond가 이스터 섬에 관해 당시 상황을 그려본 유명한 글을 인용해본다. [점점 나무들이 없어지고, 작아지고, 그리고 덜 중요한 것이 되어갔다. 과실을 맺을 수 있는 최후의 야자수가 쓰러질 무렵에는 이미 야자수는 섬의 경제생활에서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남은 것은 어린 야자수 묘목들과 덤불뿐이었다. 아무도 마지막 한 그루의 야자수가 쓰러지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몰락의 과정에서 최후의 희망마저 사라지는 결정적 순간은 성숙한 아름드리나무가 쿵 쓰러지는 순간이 아니라 새롭게 자라나야할 어린 나무가 맥없이 꺾이는 순간이다. ‘이것이 세상이 끝나는 방식이다. 그것은 쾅 하는 포성이 아니라 흐느낌과 같이 온다’ T.S. 엘리엇의 The Hollow men의 마지막 구절이다.

요즘은 후배를 만나면 해줄 말이 별로 없다. 개원의 불확실성을 두고서 불가피하게 현실과의 타협을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개원가의 현실은 이미 29일도 지나 30일째로 접어든 연못이 아닌가. 신규 개원의가 덤핑이나 꼼수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성장할 수 있는 진지한 청사진이 필요하다. 없으면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먼저 연못의 한 자리를 차지한 연잎으로서의 의무이자, 결국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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