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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니캉내캉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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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니캉내캉라캉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5.07.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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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가 제안을 했다. 죄수 3명 중 먼저 맞힌 1명만 석방시켜주는 조건으로 수수께끼를 풀어야하기로. 흰색 3개와 검은색 2개의 표식 중에 임의로 3개를 골라 마치 SBS 예능 ‘런닝맨’처럼 1개씩 죄수의 등 뒤에 붙여둔다. 자신의 것은 확인해볼 수 없지만 나머지 죄수들의 등은 볼 수 있다.

과연 자신의 등 뒤에 표식은 무슨 색일까.

죄수들은 서로의 등을 확인하고는 멈칫했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다.

오호라. 그러자 한 명이 정답을 맞추고 석방되었다. 지면상 여기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멈칫하는 상황에서는 나의 색은 무조건 흰색이다. 믿어도 좋다.

나의 색은 타인의 색에 의해 결정되며, 나의 색을 알기 위해서는 타인의 색을 봐야 한다. 내 욕망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타인의 그것에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라캉은 이 ‘세 명의 죄수’의 우화를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혹은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의 욕망이다’라고 말이다.

뭔 소리일까. 라캉의 진의는 저 상아탑의 심리학이나 철학 전공자의 몫으로 남겨두자.

보통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좀 더 순화시켜서 쓴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라캉은 현재의 주체가 시간적 흐름을 거슬러 과거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주목했다.

우리 마음속에서 시간은 거꾸로 간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에 의해 재해석되기 마련이다. 과거에 아무리 고생했던 환자도 결과가 좋으면 세상을 다 가진 보상받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죽고 못 살던 과거의 애인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기 전에 있었던 어설프고 풋내나던 기억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치과의사가 되기까지의 시간들은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고 실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면허를 따고서 지금까지 내가 봤던 환자들, 그 경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경험과 시간들에 쌓인 내 앎과 기술, 직업적인 프라이드도 사실 달라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거를 해석하는 순간의 내 자신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문의의 소수정예가 유지되느냐, 기수련자가 인정되느냐, 미수련자들을 위한 새로운 전문과가 도입되느냐의 문제는 미묘하다. 일선 현장의 바쁘고 외로운 개원의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강건너 불구경으로 손 놓고 지켜본 치과계 이슈가 어디 한두 개였는가. 하지만 이 문제는 나의 과거와 현재, 나의 존재에 얽힌 내 이슈이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큰 판을 보면 새로운 제도에서 파생되는 복잡한 이권과 명분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높은 분들이 알아서 하실게다. 다만 품 안의 계산기를 만지작거리다 보면 정작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도 못 보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난 작은 한 사람의 치의로써 개개인을 말하고 싶다. 차별적 지위를 둘러싼 전쟁 속에서 치의들은 존재론적인 위기에 처한다. 바뀌는 지위, 바뀌는 언어는 현실을 새롭게 규정한다. 이 전쟁에서 모두가 승자가 될 수는 없다. 분명 밀려버린 누군가는 새로 규정된 자신의 현재를 바탕으로 과거를 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찬란하고 아름답던 과거는 재해석되고 일부는 부정당할 것이다. 

치의들 사이에서의 타자화와 배제를 전제로 한 이 차별적 지위에 대한 욕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우리가 욕망하는 그 놈의 ‘타인의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애초의 방향을 잃고 시류에 떠밀려가는 소수정예 논란과 11번째 전문과목, 혹은 AGD로 돌려지는 관심은 표면적인 이유에 머무른다. 우리의 불안은 더 깊이에 있다. 그리고 가장 깊은 불안에서부터 욕망은 시작된다. 다만 그저 아쉬운 것은 서로 얻기 위한 싸움을 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느라 우리가 놓아버린 손이다. 연대감이다.

니캉내캉. 그래, 그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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