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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시각] 로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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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시각] 로컬 방문기
  • 조현빈
  • 승인 2016.01.14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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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치과대학 조현빈 (본2)학생

 

겨울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올해로 중학교 2학년이 되는 동생이 충치가 생겨 치과치료를 받았었는데, 남은 충치를 마저 치료하러 치과에 방문해야 했다. 치과대학 진학 이후 로컬에 치료 목적으로 방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배우고 실습했던 치료과정들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환자에 대한 응대는 어떨까 궁금했다.

여러 호기심을 안고 동생을 데리고 요즘 제일 잘 나간다는 읍내 한복판에 위치한 치과에 당도했다.

엘리베이터부터 금색으로 꾸며진 주변 경관과 이질적일 정도의 고급스러움. 문을 열자마자 눈에 띄는 세련된 인테리어. 바로 이어지는 용모단정한 직원의 밝은 인사. 치과가 잘 나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가 썩었다고 해야 하나, 충치라고 해야 하나, 우식이라고 해야 하나, 주소의 형태로 말해야 하나, 증상의 형태로 말해야 하나, 괜히 고민하는 형을 보다가 옆에서 동생이 한마디 한다.

“충치치료 때문에 왔어요.” 오. 짜식. 치과대학 4년보다 낫네.

“처음 오셨나요?” “아니오, 저번에 와서 치료 했는데 나머지 충치도 치료하러 왔어요”

이름을 묻고, 키보드를 이리저리 두드리시고는 다시 물어보신다.

“충치치료 어떤 재료로 하실 거예요? 아말감? 레진?”

“예?” 의사도 아닌, 카운터 직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침묵을 깨는 동생의 말.

“형아, 나 전에 아말감 했는데 엄마가 이번에는 그냥 레진하래~”

“아 그르나? 카면 레진으로 해주세요”

“레진은 보험 적용이 안돼서 가격이 더 비싼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그걸로 해주세요”

진료를 전적으로 환자의 선택에 맡기는 양심적 치과라니. 잘 나가는 이유를 두 개째 알 것 같았다.

40분 정도 기다려야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그 직원은 진료실로 들어가 버렸다.

기다림 끝에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부름이 있었고, 방해가 되지 않으면 봐도 되겠냐고 청해 진료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됐다. 마취가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 의사 선생님께선 다른 체어로, 그리고 또 다른 체어로 바쁘게 움직였다.

동생이 지난번 입을 오랜 시간 벌리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던 것 때문일까? 내가 실습실에서 러버댐을 준비하느라 걸리는 시간 정도 만에 선생님께선 단 하나의 버로 러버댐도 없이 소구치 프렙을 끝내셨고, 제2대구치 프렙 또한 목을 잔뜩 꺾으시고는 금방 멋지게 끝내버리셨다. 광중합을 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도, 선생님은 바쁘게 움직이셨고 옆에서 보조하시던 분께서는 미리 버를 교체해두셨다. 장갑도 끼지 않으신 채로.

진료를 이토록 짧게, 효율적으로 해주는 치과라니, 잘 나가는 이유를 세 개째 알 것 같았다.

...잘 나가는 이유는 무슨. 개뿔.

교과서에 나왔다 하면 넘버링이 몇 개가 되던 달달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했던, 치과의사를 기술자가 아닌 의사로 만들어준다는, 적응증과 금기증. 진단.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들어 보낸다는 감염, 그를 방지하기 위한, 진료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배웠던 소독과 멸균. 수복물의 상태와 수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배웠던 치아 형성, 그리고 방습과 분리.

치과대학 실습에서 배워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라 배웠던 진료 시 자세.

공부 지지리도 못하는 나의 머리에도 남아있는, 교수님들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개념들은 우리나라의 진료 환경에선 그저 사치로, 버리거나 타협해야 할 것일 뿐이었다. 치과의사에게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는 것은 진료의 질적 향상이 아니라 양적 증대였고, 학과 공부보다는 부동산 공부가, 윤리 의식으로 내면을 가꾸는 것보다 인테리어와 용모단정한 직원을 통해 외면을 치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만 같아 보였다.

 나는 환자들의 구강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좋은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치과대학에서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6년,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과 학자금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받고 싶고, 가계대출도 갚고 싶고, 금전적으로 부족함 없는 생활도 하고 싶다.

 위의 두 가지가 상당 부분 대립해야만 하는 작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나는, 나의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모두 좋은 치과의사가 되는 쪽을 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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