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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8] 진채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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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호 원장의 역사이야기 8] 진채선1
  • 안승호 원장
  • 승인 2013.11.14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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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예전에 읽던 전라북도 문학지도 라는 책을 다시 읽었어요. 몇 년 전에 아주 재밌고 유익하게 읽었던 지라 책꽂이에서 다시 찾아 읽으니 반갑더군요. 고창에는 읍성이 잘 보전되어 있는데 충청도의 해미읍성 전라남도의 낙안읍성과 함께 잘 보존된 읍성이에요.

 


셋 다 왜구들 때문에 해안가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위치한 비상시의 수비용 성이에요. 십 년 전 즈음 이 고창 읍성에 들린 적이 있는데 그땐 별 아는 게 없었던 지라 이런 게 있구나 정도였지만 이젠 이런저런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좀 쌓였으니까 좀 다를래나 하면서 기대해봅니다.


고창에 가면 선운사가 있고 조선에서 가장 기도발이 쎄다는 도솔암 마애석불에도 가보려구요. 도솔암과 관련되어 내려오는 전설은 듣는 순간 황당한 구라다 싶을 정도로 구성이 후졌어요. 그래도 민초들이 믿고 그렇다 아니다 떠들고 다녔을 그 귀여운 전설들을 음미하면서 도솔천 계곡을 오르고 싶어지네요.


조선시대 절들은 그 위치가 아주 애매했어요. 절의 불상이나 탑 등이 파괴된 것은 거의 조선의 사대부들 짓거리에요. 그것도 좀 찌질한 애들이 괜히 힘없는 중들을 패거나 불상 눈알을 파거나 하는 거죠. 그래놓고 자기가 유학을 공부한 유교도로써 우상숭배 하는 불교를 혼내줬다는 공명심을 기록하곤 했죠.


그런데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절에 해악을 가해 놓고 내심 불안해했어요. 찌질이들이니까 그런 짓을 하는 것이고 쫄아서 불안해하는 것이겠죠. 낮술하고 힘들어하고 그랬더라구요, 무서웠을 게 이해됩니다. 조선시대의 절은 민초들에게 유교가 줄 수 없는 종교적인 대안을 주었어요. 민초와 여인들에게.


양반들도 자기들은 유학을 하면서 아내가 절에 가는 것을 금기하진 않았어요. 절은 전통 음식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도 했고 숙박 기능도 했고 놀이터 기능도 했고 안식처 기능도 했어요.


어린 사내아이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었을테고 그건 그리 부정적이진 않았던 것으로 남게 되니까요. 


선운사는 다른 절보다 사람들 민초들과 얽힌 스토리가 많아선지 다른 절보다 더 애정이 가요. 동학 때도 사람들이 불안하니까 이곳에 와서 어떤 대안이라도 제시받고자 했고 서정주 같은 감수성 높은 시인도 동백꽃 운운 했잖아요.


고창이 사랑스러운 것은 동학하면서 민초들이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하도 힘들어서 들고 일어나긴 했는데 아무리봐도 특별한 대안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저런 거의 고대 시대급의 전설에 심리적인 의지를 하는 거죠.


조선의 정부도 청나라도 일본도 동학교도들이 들고 일어나면 밟아 버리려고 하는데 무슨 수로 동학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겠어요.


겨우 죽창이나 몇 개 들고 여럿이 모이다 보니 군중 심리는 생기고 또 여기서 물러나봤자 죽고 싸워도 죽고 이판사판이였을 그들의 심리적 공황. 이념이라도 있어 세계 혁명의 신념 속에 죽었다면 뭐 그럴 듯이라도 하겠는데 특별한 이념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절에서 비기를 얻었다는니 하는 전근대적인 전설이나 떠돌고 하는 거죠. 그런 남편을 믿고 따르는 어리석은 아내, 자신도 뭘 하는 지 헷갈리고 불안한 남편 지도자들의 심리는 어떠했을까.


이 풍요로운 땅 고창에서는 모든 조선의 욕심쟁이 부패관료와 지주들이 모여들어 농민들을 착취하고 굶주리게 했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는 흑토이고 옥토에요. 엄청난 생산력을 갖춘 땅이죠.
 

그런데 그곳에 사는 농민들은 지주와 이민족들에게 가장 많은 수탈 착취 굶주림 고통을 받았어요. 아마 조선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은 고창일거에요.


그런데 이곳에서 동학혁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곳에 사는 농민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 없고 산과 강으로 경계지어지는 대토지 소유주와 부패 관료들에게 가장 심하게 수탈되었기 때문이겠죠.


지금이야 그냥 동학혁명이 어쩌구 하지만 불과 얼마 전에 우리의 형제고 부모들이 이곳에서 힘없이 좌절하고 죽어갔던 그런 곳이란 생각을 하면 짠합니다.
 

이런 민초 중에 나름 또 로맨스 스토리가 있어요. 소리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판소리는 남자만 하는 거에요. 대개 무당의 남편들이 무당 굿거리 할 때 추임새를 넣거나 부뉘기에 맞는 랩을 하던 거죠.


이들을 무부라고 하는데 이들은 구전으로 전하는 소설이나 전설을 리듬을 타고 암기하여 사람들에게 전하여 주고 댓가를 받았어요. 이런 것들이 민초들 사이에 유행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이런 저급 문화를 기록하려 하지 않았고 그 가치를 개무시하였어요.


전라도 고창에 사는 아전 이방 출신 신재효라는 사람은 이런 서민들의 문학을 기록하고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고 그 돈으로 소리꾼들의 후원자가 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듣는 판소리 여섯 마당, 다섯 마당 등을 정리했죠. 진정으로 민초들을 사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생가가 고창 읍성 앞에 있어요.


이런 신재효는 아내와 여러 차례 사별하고 소리를 잘하는 진채선이라는 여인과 사랑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투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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