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형 원장의 오늘] 파가니니는 줄이 끊어져도 연주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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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파가니니는 줄이 끊어져도 연주를 했나요?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2.01.0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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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와 관련된 전설 같은 일화들은 다양한 버전으로 구전되며 인용되곤 한다. 가장 유명한 것 중에 하나가 파가니니가 공연 중에 바이올린의 현이 끊어져도 그의 신기에 가까운 테크닉으로 공연을 무사히 이어갔다는 설이다.

이 이야기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파가니니가 연주하는 도중에 바이올린 현이 하나가 끊어지고, 두번째 현도 끊어지고, 마침내 세번째 현까지 끊어져도 마지막 남은 하나로 무사히 공연을 끝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는 파가니니의 현이 끊어지는 퍼포먼스의 관중 반응이 너무 좋아서, 미리 절반쯤 갉아 놓고서 연주 중에 현이 끊어지는 것을 유도했다는 설까지 전해진다.

가장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으로는, 파가니니가 연모하는 여인을 위해, 중간의 2개의 현을 떼어버리고, 남녀를 상징하는 가장 높은 E현과 가장 낮은 G현만으로 연주하는 ‘duetto amoroso’를 작곡했다는 이야기다.

이 곡을 들은 여인이 ‘두 개의 현으로도 이런 곡을 연주하니까, 당신은 한 개로도 할 수 있겠군요!’ 라고 말했던 것이 파가니니에게 영감이 되었다는 설이다. 실제로 파가니니의 곡 중에는 바이올린의 4개의 현 중에 1개만을 사용하는 곡이 몇 개 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G현 하나만으로 연주하는 Moses Fantasy라고도 불리는 작품번호 M.S.23이다. 

국내에서 드라마 모래시계가 히트하면서, 덩달아 파가니니가 히트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의 93년도 파가니니 앨범도 그 시대적 흐름에 국내 히트했던 앨범인데, 여기에도 M.S.23번이 실려 있기 때문에 멜론이나 벅스에서 찾아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추천하는 버전은 유튜브에 있는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안탈 살라이Antal Zalai의 연주다. 그는 나머지 3개의 현을 아예 떼어 내고 오직 G현만 걸린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가끔 치과진료가, 혹은 가끔 인생이 외줄타기하는 듯 위태롭게 느껴질 때 특히 추천한다. 오이스트라흐를 연상케하는 남성적 외모와 투박하고 두꺼운 손가락으로도 외줄로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이 영상을 보노라면 그냥 ‘아 그냥 내가 외줄을 더 잘 타야겠구나’라고 어느새 수긍하게 된다. 

그렇다고 공연 중에 바이올린 현이 끊어지는 일이 아주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Ray Chen이 시애틀 심포니와 Benaroya 홀에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공연할 때 벌어진 일이다. 한창 기세를 끌어올리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1악장 중반에 바이올린의 E현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아니, ‘텅’하고 터져버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순간 객석이 술렁하는데, 이 연주자는 태연하게 남은 현으로 연주를 이어 나가다가, 악장과 악기를 재빨리 바꾸며 연주를 계속했고 공연은 중단되지 않고 이어졌다. 이 작은 소란이 수습되는 데에 불과 20초도 안 걸렸다.

한편, 이 끊어진 바이올린을 넘겨받은 악장은 다시 자기 옆자리의 수석 바이올린에게 넘기고, 그 연주자는 본인 뒤의 연주자에게 다시 넘겼다. 통상 실력에 따라 자리를 배치하는 오케스트라 특성상, 관객에게 최선의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서는 악장과 차석 또한 멈추지 않고 연주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Show must go on! 

이런 긴밀하게 잘 돌아가는 팀워크 사례를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우리 병원의 직원들과 나도 그런 팀워크를 이루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참을 왼손과 오른손이 각기 곡예를 부리며 진료를 하다가 내가 손이 고작 2개인 것이 한탄스러운 타이밍에 구원의 손길처럼 쓱하고 나타나는 스탭의 손은 얼마나 고마운가. 나 잘난 맛에 사는게 인생이라지만, 최소한 진료실에서만큼은 나 혼자서는 모든 걸 감당할 수 없는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레이 첸이 공연 중에 현을 끊어먹은 건 저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몇 년 전에 대만 필하모닉과의 협연에서 전적이 있었다. 워낙 격정적인 테크니션이 아닌가. 협연하던 시애틀심포니의 악장은 머리 한 켠에는 현이 끊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앞으로 레이 첸과 협연할 오케스트라의 악장은 분명 고려하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그 날의 관객들은 줄이 끊어져도 웅성거리지 않을테고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파가니니적 경험이 되지 않을까.

얼마전 한 모임에서 근황 토크로 시작했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모임의 절반 이상이 정신과 상담 경험이 있고, 아프고 힘든 시기를 보냈거나 아직 보내는 중이었다. 어째 굴곡 없는 평이한 삶을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하루하루 힘들게 쳇바퀴를 도는 것 같은 삶에서 실패를 피할 수 없더라도, 인생은 must go on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다 함께 멋지게 넘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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