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형 원장의 오늘] It is better to know some of the questions than all of the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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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It is better to know some of the questions than all of the answers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1.08.1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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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어느 주말 오후 거실에 굴러다니던 책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문구에 난 그만 꽂혀버렸다. ‘모든 정답을 아는 것보다 어떤 질문들을 아는 것이 더 낫다.’ ‘뉴요커’ 잡지에서 활동했던 유머 작가이자 만화가인 제임스 서버 James Thurber의  말이었다. 그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자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힌 작가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중고등학생의 교과서에 실리는 급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특히 더 그렇다. 

무슨 질문이 정답보다 왜 더 낫다는 것일까. 문학에 조예가 없는 나에게는 추측이 어렵다. 구글을 검색해보니 관련 있어 보이는 그의 카툰이 여러 개 뜬다. 저작권 때문에 해당 카툰들을 싣지는 못해 글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느 한 카툰에서는 한 미술평론가를 두고 “He knows all about art, but he doesn’t know what he likes”라고 수군대는 군중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카툰에서는 지적이고 냉철해보이는 남자의 뒤에서 아낙네 두 명이서 “He doesn’t know anything except facts”라고  말한다.

단순히 지식이 많은 것으로는 완성의 경지에 이르기 어렵다. 대용량의 하드디스크가 AI를 이길 수는 없는 것처럼 지식만으로는 그 안에서 의미를 끌어내지는 못한다. 질문이 있어야 해답이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니까. 사실 이런 것들은 우리 치과의사들이 현장에서 매일 겪는 일이다. 진단 과정중 우리의 뇌에서 이뤄지는 많은 사고의 과정들은 사실상 ‘가설-검증’의 반복이다. 그 가설들이 적절한 질문들로 순차적으로 구성돼야 적절한 결과물인 진단명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직업적인 완성을 추구할수록 질문의 폭이 좁아진다는 점이다.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우리 뇌의 가용 자원의 상당 부분을 의학적인 지식이나 이런 가설-검증 시스템을 돌리는 데에 할애하게 돼 가끔 한걸음 뒤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질문을 던질 여유를 갖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하실 것 같아 사례를 하나 들어보려고 한다.  

셰프 출신의 어느 유명 유튜버가 자신이 겪은 진상들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소개한 내용이다. 아주 가끔 일부 손님이 ‘핏물 없는 미디움 스테이크’를 주문할 때가 있다고 한다. 보통 스테이크를 자를 때 나오는 뻘건 액체는 사실 핏물이 아니고 변성되지 않은 마이오글로빈이 섞인 육즙이다. 이 마이오글로빈은 섭씨 60~70℃까지는 어느 정도 빨간색을 유지하다가 그 이상이 되면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통상 스테이크를 부드럽고 육즙이 촉촉하게 미디움으로 굽게 되면, 스테이크의 심부 온도가 60℃를 넘지 않게 조리한다. 따라서 이런 주문은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실현 불가능한 주문이다.  

하지만 이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 왜 그런 주문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다른 해답의 길이 열린다. 이 셰프의 경우, 그럴 때는 스테이크를 조각조각 잘라서 ‘미디엄 챱스테이크’로 내면 고객들이 더 이상 컴플레인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고객의 니즈는, 칼질을 하면서 그릇에 빨간 피(처럼 보이는 액체)가 고이는 걸 눈으로 보는 걸 피하고 싶었던 것일 뿐이다. 한 입 크기로 구워서 내면 될 일인데, 고객에게 핏물 스테이크의 불가피함을 설득하려 해봐야 힘만 빼고 의미 없다. 더욱이 마이오글로빈에 집착하면 빠지기 쉬운 함정인 바짝 구운 웰던으로 질기게 내놓는 것은 아예 옵션으로 고려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어쩔 수 없다고 환자를 설득하는 일이 치과에 얼마나 많은가. “마취는 싫은데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든가 “임플란트는 다음에 할거고 일단 씹게만 해주세요”와 같은 최소한 팩트들만 놓고 보면 불가능한 주문들. 환자 개개인의 사정이 달라서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렵고 모든 경우에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 사정을 들으며 따라가다보면 의외의 길이 열리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첫 페이닥터를 했던 치과에서 실장이 나에게 ‘입 안보다 사람을 보라’고 조언했던 게 못내 거슬렸던 기억이 있다. ‘아니 내가 전신질환을 얼마나 공부했는데, 너보다 환자를 모르겠냐’ 라는 치기어린 자존심도 있었을 게다. 십 년이 훌쩍 넘게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구강에 집중할수록 사람이 잘 안 보이게 되는 것 같아 여전히 유효한 조언이라 생각된다. ‘어떤 질문’들은 분명 ‘해답’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더 나은 질문’을 하는 것이 병자를 대하는 의료인에게 정말 중요한 덕목임을 아쉽게 갈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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