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17:50 (월)
[파워우먼]청아치과병원 김찬숙 이사장
상태바
[파워우먼]청아치과병원 김찬숙 이사장
  • 정동훈기자
  • 승인 2012.06.08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술 실천으로 건강한 사회 꿈 펼친다”

“치과 치료를 해주는 것은 작품을 해주는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할 때 작품과 같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치료를 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김찬숙(청아치과병원) 이사장은 의사의 소명의식을 갖고 자신의 진료에 있어 책임을 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봉사하는 삶 꿈꿔와  

많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면만 보려고 한다. 그런 삶을 꿈꾸면서도 노력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김 이사장이 거둔 성공 뒤에 있는 끊임없는 노력과 긍정적인 사고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열정을 가지고 노력해야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김 이사장은 1956년에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생에 대한 외경’이라는 사상을 삶에 그대로 투영한 진정한 실천가였던 슈바이처 박사를 동경했던 그는 의사의 길로 나아가 봉사를 하는 삶을 꿈꿨다. 

“조금 더 빠른 시간에 진료봉사에 뜻을 둔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 치과대학은 4년, 의대는 6년을 다녀야 의사가 될 수 있었죠. 사실 여자로서도 4년이라는 시간이 매력적이었고, 치과의사이셨던 고모부의 영향도 있어서 치과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1960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김 이사장은 구강외과 인턴으로 근무하다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의 유학생활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연구와 진료로 시간은 언제나 모자랐다.

“유학 했을 당시 독일도 전쟁 후라 환경도 좋지 않았고 저도 집에서 돈을 가지고 올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낮에는 대학병원 인턴으로, 저녁에는 실험하고 논문을 쓰는 일의 반복이었죠”

힘든 유학생활이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성실함으로 이를 극복했다. 또한 남편의 도움도 컸다. 독일어를 배우게 된 것도 남편 덕분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미팅 자리에서 공대생이었던 남편을 만났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독일로 유학을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독일어로 된 시집을 하나 주더이다. 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긴 했지만 읽을 수가 없어서 독일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지요. 소식이 끊어졌다 독일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누가 먼저 반했냐고 물어보는 것은 곤란해요”

남편은 김 이사장이 공부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언제나 옆에서 도와주었고, 학위와 교정학 전문의 취득까지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진정한 치과의사의 소명   


“유학생활 중 고달프고 힘든 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울기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걸 하다 중단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습니다”

산을 오를 때도, 쟁기질을 할 때도 산 전체를, 밭 전체를 보면 포기하기 일쑤다. 그는 목표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성실히 올라갔으며, 그저 묵묵히 쟁기질을 하며 목적지를 향해 갔다.

김 이사장은 젊은 여성 후배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과 아픔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도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여성 치과의사들은 낮에는 진료를, 저녁에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공부도 시키는 등 낮에 못다해준 것을 보상해 주려고 집에 일찍 들어갑니다. 사실 힘든 일이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어머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배웁니다. 거기서 보람된 삶을 느끼시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 당연히 있다. 이에 김 이사장은 후배들이 혼자 고민하기보다 여럿이 더불어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자치과의사회를 만들었다.

“1971년에 개업하고 나서 여자 대학생 2명이 찾아와서 여자치과의사회를 만들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학회를 가도 여자가 한두 명 밖에 안 되는 시기입니다. 소수라는 약점을 커버하고 서로 돕고 기대고 싶어 여자치과의사회를 만들게 되었는데, 후에 대선배님들도 계셨고, 단체를 훌륭하게 리드하실 김유봉 선배님에게 회장직을 넘겨드렸죠”

올해로 41주년을 맞이하는 여자치과의사회는 현재 67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학술활동과 봉사활동 및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로 발전해왔다. 이를 지켜보는 김 이사장의 마음도 뿌듯하다.

“후배들이 대단하고 대견스럽게 생각됩니다. 우리 시절만 해도 소극적이었는데 요즘에는 당당한 후배들이 많아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앞으로도 치과의사의 본분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늘 사회를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김 이사장은 1996년 서울치대 동창회장과 1999년 서울대총동창회 부회장직을 역임하면서 학교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개인 사재를 털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서울대와 동창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치과대학 졸업자로는 최초로 서울대 총동창회가 선정하는 ‘제 17회 관악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환자 옆에서 양질의 치료를 하면서 사회에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김 이사장의 말에서 진정한 치과의사의 소명이란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한다.

“예전에는 60세까지 진료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80세까지로 늘어났지요. 일찍 관두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환자 한 분이 계신데 저와 비슷한 연배이십니다. 자기가 살아 있을 때까지 진료해 달라고 하십니다. 환자분들은 아플 때 갈 데가 있는 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저 또한 믿고 의지하는 환자분들이 있어 감사하지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