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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무한의 체스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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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무한의 체스 복싱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5.09.2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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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체스복싱이라는 이색 스포츠가 있다.

체스와 복싱을 번갈아가며 3분씩 총 11라운드를 뛰는 경기다. 한창 피 튀기며 복싱으로 다투다가도 공이 울리면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체스를 두는 식이다. 만화에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발전하여 오늘날의 룰과 형식이 정립됐는데, 독일, 러시아, 영국 등에서 인기라고 한다. 체스로 받은 스트레스를 바로 주먹다짐으로 풀 수 있어서 좋다는 평이다. 아니 왜.

 


한때 슈퍼컴퓨터 성능평가의 가늠자가 될 정도로, 체스는 인간이 가진 이성과 지능의 상징이다. 반면 복싱은 폭력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기반한 투기이다. 냉탕과 열탕을 넘나드는 이 극단적인 조합은 철인삼종경기나 마라톤과는 다른 차원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라 할 수 있다.

개원가에서는 소아환자와 그 보호자를 대하는 것이 체스복싱에 비견되지 않을까 싶다. 진료실에서 아드레날린을 한껏 펌핑하며 전력투구했더니 바로 데스크에서는 순식간에 머리를 차갑게 식혀서 대응해야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기존 예약 환자를 기다리게 하면서까지 우르르 몰려온 아이들 검진을 전쟁치르듯 해놓았더니 정작 보호자가 여기는 옆 치과처럼 검진하면 볼펜 하나씩 안주냐고 물어보는 식이다.

최근에는 ‘맘충’이라고도 하던가. 사실 과연 어느 선까지가 진상이고 정상인지를 나누는 경계선을 설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저 당하면 본능으로 알게 될 따름이다. 진상을 두고서 개인 차원에서 정의가 어렵다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진상의 확대 및 재생산이 이뤄지는 메커니즘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언론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가 진상들의 주요 산실로 꼽힌다. 지역 맘카페, 블로그, SNS 등 종류는 다양하지만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플랫폼이자 정보의 유통채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최근 소비자가 특정 상품, 서비스를 선택할 때 정보를 얻고 교환할 수 있는 이런 채널은 전세계적으로 업종을 불문하고 더욱 확산되는 추세이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민감해지는데 반해, 가격, 품질, 서비스는 실시간으로 비교되는 상황에 놓인다. 구글에 따르면, 90%의 소비자가 쇼핑 전에 스마트폰으로 제품을 검색해보고, 84%는 매장에서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한다. 백화점 매장에 가서 실물로 직접 보고 인터넷 최저가도 한번 검색해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패턴인 것이다.

이에 따라 메이시스, 월마트, 아우디 등 오프라인 매장이 쇼룸의 성격으로 변모하고 있다. 직접 만져보고 타보고 써보고 나서야 구매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치과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소아환자는 보호자 및 가족 치료로 이어지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치과를 경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호자들은 아이의 치료를 맡기면서 마치 수입차를 시승하는 방식처럼 열심히 치과를 평가하는 중이다. 이를테면 카페에서 견적내고 여러 딜러들의 조건도 물어보고 그 중 최저가로 골라 비싼 선팅, 골프백, 우산까지 몇 개 더 받아냈던 꼼꼼함의 역습이다.

이렇게 매장, 웹, 모바일, 소셜미디어 등 복수의 채널을 활용하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섬세한 전략이 요구된다. 다양한 채널들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특정 브랜드,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경험을 관리하는 이른바 ‘옴니채널’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전략의 목표가 분명해진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주도권을 움켜쥔 소비자들이 이탈하지 않도록 고객의 충성도를 확보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다.

진상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기업의 노력과 욕망의 틈바구니에서 발생한다. 어떻게 고객충성도를 확보할 것이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진상은 불편한 문제에서 대처 가능한 문제로 바뀌게 된다. 다만 슬픈 점은 어찌되었든 진상 대응은 원장의 몫이라는 것. 그리하여 개원가의 체스복싱은 오늘도 무한의 라운드가 반복된다.

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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