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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환자는 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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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환자는 뭘 모른다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5.05.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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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루트치과 이수형 원장

 

환자들은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는 입장이 바뀌어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정정해주는 쪽이 되었다. 환자들에게는 재미도 없는 전문적인 내용을 가능한 이해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목이 아프도록 떠들어댄다. 무엇을 원하는지 거듭 확인하고 무엇을 할지 거듭 상의한다.

하지만 그래봐야 ‘전설의 고향’으로 가자는 손님을 두말없이 ‘예술의 전당’으로 태워다 주었다는 택시기사의 현명함에 아직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스티브 잡스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생산해서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대중이 원하던 것은 고작 ‘더 빠른 말’이었다. 대중은 근본적으로 본인이 무언가를 원하기는 한다는 것은 느끼고는 있으나 그것을 정확히 요구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뛰어난 결과물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마다 대중의 이해와 납득을 구하기 어려우며 도리어 대중의 어설픈 간섭이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놀라운 결과물을 보여줌으로써 잠시간의 소통의 부재를 상회하는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낫다는 게다.

치과의사는 정규교육과정을 통해 과학과 기술 전반을 익히고 이후 숱한 임상경험을 통해 그 양자를 조율하여 비로서 임상의로서 완성된다. 이런 전문성은 의사의 자율성과 전문성, 경험적 판단이 존중되어야 발휘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미셀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일반인은 바라볼 수 없는 표면 밑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의사의 능력’ 자체가 바로 의사의 권력이 된다고 했다. 진단-치료계획-치료의 과정에서 정작 아픈 신체의 주인인 환자는 배제되어도 의사는 본분을 다하는 한 존중되었다. 뛰어난 결과를 내면 그간 소통의 부재를 만회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런 고리타분한 치과의사는 더 이상 대한민국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 의사의 고전적인 헤게모니는 해체되었다.

대량 생산 - 대량 소비에 대응되던 과거의 의료모델은 환자 개개인에 맞춘 개인 생산 - 개인 소비의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비즈니스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모델은 전문가 컨설팅 모델로 넘어갔다. 시골 내과 대기실에 환자들을 줄세워 놓는 컨베이어벨트 식의 병원을 환자는 선호하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의사가 환자와 일대일로 장시간 대화하는 정신과가 더 이상적 모델에 가깝다. 

환자는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알고 싶어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고 자신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나아가 나에게 맞는 의사를 알고 싶고 택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과정들이 의료서비스의 만족을 이루는 필수 핵심 요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희생하고서 나중에 결과로 만회한다는 전략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아쉽게도 의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는 대중의 시도는 집단 지성에 기초하고 불특정 다수에 의한다는 한계가 있다.

평가를 왜곡시키는 이해관계나 주관적인 편견 등을 배제하기 위해 가능하면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작 환자들이 원하던 치과모델에서 주로 창조되는 가치들, 정량화하기는 어려운 개개인의 맞춤 의료, 경험, 만족도가 설 자리를 잃는다.

원하는 것은 고급 개인별 컨설팅 서비스인데 평가기준은 대량생산의 공산품 평가방식인 셈이다.

‘양질의 진료를 신뢰할 수 있는 의사’, ‘고난이도 치료를 잘하는 의사’에 대해 개인이 평가하기는 쉽다. 반면 대중은 평가를 합의해서 내놓기 어렵다. 반면 ‘과잉진료 안 하는 의사’는 대중이 무척 평가하기 쉽다. 최소의 치료계획, 최소의 치료비용, 덤으로 동정마저 불러일으키는 해당의사의 낮은 소득. 이른바 객관적인 근거들이 주르륵 나오니까.

국가가 방임하고, 미디어가 자극적으로 다루고, 환자가 치과의사에 대한 평가를 원하는 한 비슷한 포맷은 반복될 것이다. 의욕은 좀 꺾이겠지만 우리는 그저 늘 하던 대로 양질의 진료를 결과물로 보여주면 된다. 그저 변화되어가는 관계에 맞춰서 좀 더 잘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것도 이미 늘 하고 있던 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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