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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하얗게 불태웠어, 번아웃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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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하얗게 불태웠어, 번아웃 신드롬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4.05.22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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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끝나지 않는 것이 있으랴. 마치 개원가를 바꿀 수 있는 것 마냥 의욕이 충만했던 젊은 치과의사의 치기도 시간이 지나면 한 풀 꺾이기 마련이다.

치과를 오픈하고 마냥 늘어날 것 같던 매출과 환자 수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정체돼버리고 환자, 직원, 경영 등 개원의 삶에 익숙해지는 때가 온다.

병원과 집을 오가는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에너지는 서서히 소모돼 간다.

주말을 쉬고 연휴를 쉬어도 오래 쓴 휴대폰 배터리마냥 처음처럼 꽉꽉 다 충전되지도 않거니와 조금만 써도 방전만 빨라진다. 이윽고 출근이 싫어진다.

비단 개원의뿐만이 아니다. 일요일 저녁부터 월요병에 괴로워하던 직장인들도 취업에 목말라하고 첫 출근에 두근대며 밤잠을 설치던 신참 시절이 있었을 게다.

그러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직장인의 10명 중 7명은 ‘회사우울증’이요, 6명은 ‘번아웃 신드롬’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해 회사 가기 싫은 거다.

게다가 현대인이 번아웃 신드롬에 빠지는 텀도 갈수록 짧아져서, 1년 이상 일한 화이트칼라의 4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직장을 옮길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찌 치과라고 예외겠는가. 쳇바퀴 같이 하루하루 살아가다보면, 일상의 어느 순간 불현듯 정체돼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번아웃이 다가온다.

빙글빙글 제자리를 도는 것 같아도 쌓이는 것이 있고 배우는 것이 있으면 나선형으로 위로 상승하는 모양새가 나올 터이다.

하지만 개원의는 이미 그 자체가 오너 경영자이기에 승진이나 발령 등 보직의 변화 따위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저 반복될 뿐이다.

본인의 직업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숙달되고 안정화됐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겠지만, 또 그만큼 감수성이 무뎌지고 일상의 감사함을 잊기 쉬운 함정도 있다.

거기에 스트레스를 주는 내외적인 요소들이 더해지면, 도리어 개원의가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오히려 번아웃 신드롬에 더 취약하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한다. 최근 두어달 정도 번아웃 신드롬에 시달렸다. 무슨 젊은 놈이 벌써 그러냐 싶겠지만, 직장인들의 경우에서도 20, 30대에서 번아웃 신드롬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야근, 특근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목표, 이상이 높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붓는 사람이 번아웃 신드롬에 취약하다. 모든 조건이 딱 치과의사다.

야간, 주말 등 늘어나는 진료시간, 낮아지는 흰 가운의 권위, 진료 스킬 향상을 위한 자기계발, 늘어나는 개원 대출의 부담, 기대보다 저조한 매출, 치열해지는 경쟁 등 스트레스 넘치는 이 모든 요건들은 젊은 신규 개원의들을 빠르게 번아웃 신드롬으로 몰아넣는다. 

개원의가 번아웃 신드롬에 시달리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직원, 환자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다.

직장인처럼 직장을 이직할 수 없는 개원의는 안식월 개념으로 잠시 쉬던가, 아니면 치과를 접는 것밖에 선택항이 없다.

그마저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상황에서 어느 쪽도 쉽게 택하기 어려워, 대부분은 그저 이 악물고 버틴다.

그 악문 이들의 틈새로 파생되는 이차적인 문제들을 작금의 개원가 현실에서 과연 온전히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돌려야 하는가.

덤핑이나 부실한 추후 관리 등 기존에 지탄 받아온 이유 말고도, 개원의들의 평균 개원 기간이 짧아지게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그리고 개원의, 환자, 직원 모두에게 과거보다 못한 상황으로 문제가 악순환될 것이 우려된다.

치과계에 산적해있는 많은 이슈들을 두고서 개별 문제에 대한 개별적인 접근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들의 총합으로 개원의가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의 관점에서도 바라보자. 지쳐있는 치과의사를 국민이 원하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내 치과를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맡기고 쉬어볼까 고려하다가도 발목을 붙잡았던 것은 내 환자들이었다.
그 심란한 와중에서, 수년째 정기체크를 받으러 오는 개원 초 구환들을 대하면서 어느새 그 사람의 주치의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감사함과 책임감을 깊이 느끼게 되는 경험을 했다.

아마 연차가 쌓인다는 것은 이런 경험을 무수히 많이 했다는 것일 테다. 번아웃 신드롬이 40,50대 직장인들에게서 오히려 적게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하자.

번아웃조차도 익숙해지는 것일까. 그보다는 길게 바라보고 열정을 다하며 시간이 지나면, 분명 좋은 일들이 지금보다는 늘어난다는 쪽으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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