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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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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 31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8.04.1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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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떠오른 아프리카의 밤

한참을 왈가왈부 하는데, 크리스틴이 피곤하다며 먼저 텐트로 가겠단다. 한참을 앉아서 더 노닥거리고 있는데, 크리스틴이 다시 와서는 무서워서 도저히 혼자 텐트로 못 가겠단다. 이곳 텐트는 숲속에 뚝뚝 떨어져 있는데, 크리스틴은 조용한데 찾아간다고 제일 후미진 곳을 선택했나 보다. 달빛은 보름이라 밝은데, 덤불에서 동물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엄살이다. 

호세가 바래다주겠다고 흑기사를 자청한다. 호세는 맨날 크리스틴을 놀려 먹는데 재미를 들였다. 예를 들면 크리스틴이 자기 나이가 32살이라고 하면 ‘에이 거짓말, 45살은 돼 보이는데…’ 하는 식이다. 그래도 궂은 일이면 꼭 먼저 나서고 일행들을 챙겨주는 호세가 대견스럽다. 평소에는 깍쟁이고, 거칠 것이 없는 크리스틴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 어렸을 때 생각이 난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어린 시절 나는 경기도 안성이라는 소읍에서 살았는데, 그때 모든 집들이 그랬듯이 화장실이 집 밖에 있었다. 밤에 화장실 한 번 가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귀신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지, 당연히 재래식이었던 화장실에도 귀신이 살고 있어서 밤중에 어린애들을 잡아먹는다는 둥, 화장실은 그 자체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거기다 왜 전구는 늘 15촉 짜리 빨간 전구를 썼는지. 사위가 어둑한데, 주위는 온통 붉은빛이니 밑에서 손이라도 쑥 하고 올라올 것 같아 공포심은 더 배가 된다. 

그래서 밤에 대변을 볼 때면 늘 누나를 깨워서 밖에서 망을 보라고 했는데, 누나가 안 일어나면 아버지를 깨우는 수밖에…. 시골집이지만 꽤 커서(아마 어린 시절이니까 더 크게 보였겠지만) 어머니가 집안에 닭을 키워 달걀을 팔아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수입을 보충했었다. 내가 밤마다 화장실을 간다고 하니까 하루는 아버지가 나를 닭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러고는 “닭님, 닭님, 닭이나 밤에 똥 누지 사람도 밤에 똥을 눕니까” 하고 주문을 외란다. 하라는 대로 절을 세 번 하면서 주문을 외면 신기하게도 한동안은 밤에 화장실 생각이 안 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방학 때 늘 외가에 가서 지냈는데, 외가는 안성읍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그야말로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러니 호롱을 들고 가야 하는 화장실 가는 길이 더 무서울 수밖에. 집안에 밝은 화장실이 있는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불과 50여 년 전의 일이 지금 아프리카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밤에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깨서 보니 달빛에 비친 나뭇가지가 텐트 벽에 멋진 문양을 만들었다. 오늘은 유난히 아름다운 밤이다.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가니 영국 할머니들이 신이 나서 떠든다. 어젯밤에 화장실에 가다가 좁은 숲길에서 코끼리하고 마주쳤다는 것이다. 할머니들 말에 의하면 잠결에 길을 가는데, 갑자기 앞에 집채만 한 코끼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오더란다. 놀라서 옆으로 비켜나니까 유유히 제 갈 길을 가더란다. 캠핑장 매니저가 이 말을 듣더니 요즘 매일 밤 오는 코끼리란다. 이 지역에는 ‘무차바나무’라는 나무가 군락으로 있는데 그 코끼리는 그 열매와 잎을 먹으러 밤에 온다고 일러준다. 그래서 이곳 지역 이름이 코끼리 점보의 ‘Jumbo Junction’ 이란다. 우리도 낮에 매니저가 먹어도 된다고 해서 땅에 떨어진 열매를 맛봤는데, 작은 무화과처럼 생겼고 맛도 무화과와 비슷했다. 코끼리는 순해서 사람이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Flynn이라는 이름도 지어 줬단다. 일행들도 오늘은 꼭 밤에 오솔길을 지키고 있다가 코끼리를 봐야겠다고 벼른다. 

늦으면 해가 뜨거워 힘들기 때문에 여덟시에 오전 보팅이 시작된다. 어제와 같은 대열로 어제보다는 훨씬 멀리 간단다. 얕은 물을 지나 어느 섬에 도착하니 여기부터는 부시워크라고 다 내리란다. 걸으면서 얼룩말 무리도 보고, 소떼도 보고 코끼리 가족을 보면서 한 시간 정도를 걸었다. 

여기 소는 임자가 있는 소로 물을 따라 주인이 이동시키면서 유목을 하는 것이란다. 모양은 꼭 버팔로를 닮았는데, 팀리더가 그래서 저 소를 이곳에서는 ‘비팔로’ 라고 부른다고 농담을 한다. 비프와 버팔로를 합친 말이다. 

소 등에는 ‘캐틀 이그레타’ 라고 불리는 하얀 새들이 한둘씩 앉아 있는데, 새는 공짜로 물 위를 이동을 하고 그 대신 소 등에 있는 벌레를 잡아주는 서로 공생관계라고 한다. 

수련 위에는 작은 새가 마치 물 위를 걷듯이 뛰어 다니는데, 물 위를 걷는 예수 같다고 해서 ‘Jesus Bird’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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