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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직선제의 두 번째 보스, 선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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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직선제의 두 번째 보스, 선거권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6.04.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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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가끔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들이 있다. 키보드를 부수고 게임패드를 수차례 집어 던지면서도 누가 이기나 오기로 계속하게 되는 게임들이다.

최근에 높은 난이도로 화제가 되고 있는 다크소울3이라는 게임은 고작 게임 조작방법을 알려주는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수십 번을 죽고 게임을 접은 사람까지 나올 정도다. 물론 뒤로 갈수록 더 어려워진다.

12년 동안 공부해서 대입을 무사히 치르고 나면, 모든 게 끝난 것 같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에 취하는 것도 잠시다. 취업, 결혼, 육아라는 난관이 기다리는 게 인생사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늘 그런 식이다. 첫판 보스를 깬 흥분과 자신감도 잠시, 저 앞에 두 번째 보스가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말, 제65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직선제가 통과됐다. 다크소울3의 두 번째 보스한테 30번쯤 죽었을까, 이성의 마지막 한 가닥마저 상실해가고 있을 때쯤 직선제가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와우. 총회에서 직선제 통과라는 첫판 보스는 깼구나. 기쁜 마음도 잠시, 앞으로 협회장 직선제에서의 두 번째 보스는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최근 치협의 행보를 보면 민심을 읽고 반영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몇 주 전에 시행한 전문의제에 관련한 설문조사처럼 필요하면 기간을 연장해서까지 민심을 파악하려는 분위기가 읽혀졌다.

많은 치의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협회장 직선제는 현 최남섭 집행부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다. 직선제의 도입은 이러한 위와 아래가 함께 기조의 변화를 이뤄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고생했고 모두에게 감사하다.

3만 명의 치의들은 수련 여부, 개원 여부, 지역, 공직 등에 따라 각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러한 저마다의 입장을 최소한 협회장 선출에 있어서 만큼은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도입되는 직선제의 취지를 고려할 때, 당연히 가능한 많은 치의들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 직선제의 대전제가 될 것이다.

이때 지휘체계가 잡혀있는 집단들은 좀 더 심플하다. 의사결정과 참여에 있어서 더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수련의들은 일사불란하게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시위도 한다.
투표라고 예외는 아닐게다.

반면 파편화돼 한목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참여와 행동을 끌어내기가 어려운 개원의들은, 수적 우세를 투표에서 활용하는 전략이 유효함에도 그다지 유리하게 끌어내지 못한다. 선거권에 관심이 없거나, 선거권이 있어도 투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통해 협회장을 선출한 의협의 경우, 과거 통계를 보면 전체 의사의 수의 30~40%만 선거권을 가졌고, 그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 중의 3~40%만 실제 선거에 참여했다. 투표율에 따라서는 실제 민심을 충분히 대변하지 못하고 왜곡될 소지마저 있다.

선거권을 가진 이들의 투표를 이끌어내는 부분에서는 다행히 직선제준비위원회가 온라인 투표를 고려 중이기 때문에 기대해 볼 여지가 있다.

2015년 39대 의협회장 선거의 경우, 사전에 온라인과 우편을 선택해 투표했다. 온라인 투표가 78%, 우편 투표는 20%, 합쳐서 31%의 투표율이었다.

선거권이 없던 사람들이 선거권을 갖게하는 부분에서는 무적회원이나 미납회원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현재 정관에서는 선거권은 ‘의무를 다한 치협 회원’에게 있다. 정관에서 말하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지부에 소속도 돼있고, 회비도 빠짐없이 다 냈어야 한다. 하지만 직선제와 관련해 정관을 수정할 여지는 남아있다.

특히 직선제를 처음 도입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한시적으로라도 그동안의 무적회원, 미납 회원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선거권에 한정해, 피선거권과 분리해 기준을 완화할 수도 있다. 의협이나 한의협의 경우, 입회비 및 선거 당해 회계연도를 제외한 최근 2년간 연회비 완납자에게는 선거권을 주고 있는 것도 참고할 수 있겠다.

사실 직선제가 도입됨에 따라, 치협 및 지부에 참여하지 않을 근거가 약해졌다고 본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추대된 그들만의 협회장이라는 일부의 논리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세부단체는 더욱 활성화될 것이고, 대의원이나 계파에 따른 회장 흔들기가 심해질 수 있기에, 오히려 지지나 견제를 위해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더욱 요구된다. 회비도 안내고 뒤에서 관전하며 훈수나 두는 시절은 이제 끝났다.

이번 달에 있었던 치협 총회에서는 간선제로 뽑힌 현 치협회장에 대한 불신임안이 부결된 한편, 의협 총회에서는 직선제로 뽑힌 현 의협회장에 대한 자진사퇴 권고안이 안건으로 올라와 부결됐다.

직선제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좌충우돌하는 치협의 서막일 수도 있다. 다만 안티테제가 그동안 체화된 방조의 자세와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나 진테제의 모순을 드러내고 정반합할 수 있는 판이 깔리게 됐다는 데에 의의를 두자.

이 판에서 누가 얼마나 참여할지는 투표에 달려있고 선거권에 달려있다. 많은 치의의 참여와 준비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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