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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칼럼] 거세개탁(擧世皆濁) 아역탁(我亦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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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교수의 칼럼] 거세개탁(擧世皆濁) 아역탁(我亦濁)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4.09.25 10: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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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치대 보존학교실 이승종 교수

 

교수신문은 해마다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전국의 교수들에게 설문조사해 발표하는데 2012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했었다. ‘거세개탁’이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듦’을 의미할 때 쓰는 말이다.

굴원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 때 한 어부가 “어찌 이 꼴이 되었느냐”고 묻자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고 답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그런 굴원의 말을 들은 어부는 웃으며 말하길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럽다면 발을 씻으면 되지’라며 융통성 없는 굴원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원래 이 말은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이 돈과 권력을 좇아 탁해지는 세태를 비꼰 것인데 작금의 왜곡된 의료계 환경에서 사는 우리네 현실을 또한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근관치료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나라의 근관치료 보험수가를 볼 때마다 참담한 생각이 든다. 다른 나라의 수가와 비교하는 것은 아예 의미도 없고,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가를 받고서도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이 근관치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개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너는 월급쟁이니까 수입에 신경 안 써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 대학병원도 수입에서 초월할 수는 없다. 학생이 있는 한 교수로서의 월급이야 받겠지만 과의 수입이 떨어지면 모든 장비 구입이나 연구사업에 제한을 받게 되니 교수라고 해서 수입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보존과는 전문진료과 중에서 보험진료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다달이 나오는 수입통계지표를 보면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한다. 과연 이런 환경에서 굴원처럼 我獨淸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래도 지금은 학교에서 월급을 받으니까 교육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돈에 초연한 척 원칙대로 하고는 있지만 만약 지금 내가 개업을 한다면 아마 이 수가로는 두 세 달을 버티기도 어려우리라. 그러다보면 나 역시 다른 항목에서 수입을 보정하는 我亦濁이 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료계의 부조리는 처음부터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실이다. 자연치아아끼기운동에서 두 차례 ‘저수가로 인한 의료행태의 왜곡’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국회공청회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시민단체의 대표들이 패널로 초청되는데, 그 분들의 한결 같은 논리를 보면 의사들은 그래도 비보험에서 벌어먹으니까 보험수가는 참아달라는 논리다. 그러면 뭔가? 의사들 보고 적당히 我亦濁 해서 왜곡된 세태와 타협하고 살라는 의미가 아닌가? 세상에 이런 불합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 정상적인 전문진료의 의료전달체계가 확립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동네 내과, 산부인과는 없어지고 미용 관련 클리닉만 생겨나는 게 아닌가. 지금 전문의제도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이런 상태에서 누가 과연 근관치료 전문클리닉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서양의 자유수가체계를 가진 나라처럼 근관치료 하나에 이삼천불 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 그러나 최소한 전문진료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수가지원이 돼야 한다. 굴원의 擧世皆濁我獨淸 하면서도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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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성 2023-09-17 00:02:27
진정 거세개탁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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