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2 (금)
[파워우먼] 치과계 통역 전문 신미라 통역사
상태바
[파워우먼] 치과계 통역 전문 신미라 통역사
  • 최유미 기자
  • 승인 2014.07.03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아서 시작한 통역, 평생 직업 됐어요”

“치과 분야에 통역이 활성화 되기 전에 우연히 소개로 시작하게 된 일이 이렇게 10년이 넘게 됐다. 그때 이후로 지금은 치과 쪽에도 통역이 많이 활발해지고 자리 잡은 것 같다”

치과계 학술대회에서 대부분의 해외연자 강연을 동시통역 해주는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신미라 통역사다. 영어권 연자가 초청받을 때는 분야에 상관없이 통역을 하곤 하는 신미라 통역사가 처음 치과계 통역을 시작한 건 임플란트가 한참 국내에 보급 될 때였다.

신미라 통역사는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은데 타나우 교수가 강연을 왔을 때였다”면서 “처음에는 타나우 교수가 그렇게 유명한지도 잘 모르고 일단 통역부터 했다”고 떠올렸다.

이어 “다른 분야에서 통역 경력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기가 다져져 있어서 그런지 주최 측에서 좋게 평가한 것 같다”면서 “이렇게 조금씩 신뢰가 쌓이면서 치과 학술강연에서 점차 통역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신 통역사가 치과 쪽에 발을 내딛기 시작한 가 임플란트 붐이 일어나던 시점이어서 치과의사들의 배움의 열정이 뜨거웠다고.

신 통역사는 “그때는 임플란트를 대학에서 배우던 시기가 아니어서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학습을 해야겠다는 열정이 많았다”면서 “다양한 세미나가 많이 열렸고 임플란트의 대가, 유명연자들이 한국에 내한해 강연하는 횟수가 몇 년 간 지속적으로 많았다”고 밝혔다.

임플란트가 전성기 였을 때는 한 달에 서너번 통역하는 일도 많았다. 통역은 보통 한 달에 한두번 하는 것도 많은 편인데 이 때는 정말 바빴다.

“물론 다른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통역사를 활용하지 않던 시장에서 이만큼 하게 됐다는 것도 많은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치과 전체를 하다가 소개를 통해 주요 학회에서도 통역사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춘·추계학술대회 시 해외연자가 올 때만 통역을 쓰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반 전문가가 됐다.

“몇 년 동안 치과 분야 통역을 해오면서 학습을 많이 했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 임플란트 시장이 줄어든 것 같아 조금 아쉽다. 그러나 국내 임플란트의 우수성은 높이 살만한 것을 느낀다. 요즘에는 해외에서 국내 임플란트 공부를 위해 오는 경우도 많더라”

영어는 나의 운명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때 영어 선생님이 그녀를 너무 예뻐했다. 문장을 읽어보라고도 시키고 이것저것 많이 시키는 걸 해내면서 저절로 영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신 통역사는 “지금 생각하면 운명인 것 같다”면서 “선생님이 예뻐하시니까 영어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공부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를 공부하면서 재미도 느꼈고, 하다 보니 영어가 앞으로 큰 가능성이 있겠구나라고 저절로 생각하게 됐다”며 “자연스럽게 대학도 영문과로 진학했다”고 밝혔다.

신 통역사의 학창시절에는 원어민 영어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라디오에서 10분 정도하는 영어회화 프로그램을 아침마다 들으면서 등교 준비를 했던 그녀다.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틀어놓고 들었다. 그러다보면 하루 종일 그날 들은 영어회화들이 머리와 입가에 맴돌더라. 그렇게 자연스럽게 익히고 나름 열심히 하면서 영어를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또 한 번 운명이라 느꼈던 순간은 신 통역사 4학년 때 처음으로 통역대학원이 생겼을 때다. 전문 통역사를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국가에서 보조금도 지원 해주면서 개설된 것.

신 통역사는 “영문과에서는 문학을 공부하니까 그 작가의 사상을 보는 것을 위주로 해서 재미가 없었다”면서 “오히려 써클 활동으로 했던 AFKN 리스닝 회화, 미8군에 방문해 회화하는 활동 등을 하면서 회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냈다”고 말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돼서 너무 재밌고 즐겁게 공부했다. 운명처럼 다가온 영어가 이렇게 평생 직업이 될 수 있었다”

통역을 하다보면 겪어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많다. 어떨 때는 연자가 틀린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전달과정에서 애꿎은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고.

이미 공급과잉이 된 통역시장. 이제는 그 틈새를 잘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

넓은 시야 가져라
“돈을 벌겠다고 통역 일에 뛰어드는 것은 이제 미련한 일이다. 영어를 정말 좋아하고 흥미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호기심이 있고 내 자신에게 맞아야 한다. 또 통역 일 외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쪽을 집중적으로 하나하나 하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분명 어느 순간 기회가 올 것이다”

재밌어서 시작한 통역 일이 평생 직업이 됐다. 자신을 찾지 않는 순간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신미라 통역사는 이제는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느끼고 싶다고.

“지금까지 쭉 앞만 보고 일을 해온 것 같다. 이제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천천히 스텝을 밟을 예정이다. 그렇지만 통역은 평생의 업이고 계속해서 끝까지 하고 싶다”

치과 쪽의 통역 일을 해오면서 신 통역사가 느끼고 배우는 점도 많다고. 특히 한국의 치과의사들의 열정을 극찬했다.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치과의사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똑똑한 사람들이 도전정신까지 뛰어나 다양한 제품들도 발명하고 그런 것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치의학계뿐만 아니라 산업시장에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나라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도 치과의사 선생님들과 함께 열심히 통역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