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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時不可失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이승종 명예교수

얼마 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오래전 작고하신 칼럼니스트 이규태 선생의 책을 뒤적이다 ‘여가를 악덕시하는 버릇’이라는 글을 보고 공감했다. 

작가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들렀을 때 유명한 케임브리지 대학보다 그곳에 소문난 달리아 공원을 먼저 들렀다고 한다. 공원은 이름이 달리아가 아니지만 그 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달리아 화원이 잘 가꿔져 있어서 이 같은 이름으로 통칭되고 있었다.

작가는 달리아보다 달리아를 가꾼 피콕크라는 노인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 노인은 주급 17파운드의 난방공사 인부였는데, 집세를 내고 나면 고작 13파운드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고달픈 인생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달리아를 기르는 취미가 있었다. 시청이 관리하는 공원의 한쪽 모퉁이를 빌어 그곳에다 달리아를 재배했다. 일만 끝나면 이곳에 와 손질을 하길 10여 년, 그렇게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달리아 화원으로 가꿔놓게 된 것이다. 이 노인은 만나는 사람에게 늘 ‘취미가 나의 제1인생이요, 직업은 나의 제2인생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취미활동에 대한 동서양의 의식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중산층에 대한 정의가 동양인들은 수입이 얼마고, 몇 평 이상의 집을 가지고 있고, 어떤 차를 타는가에 있는 것에 비해, 서양인들은 어떠한 취미생활을 하고, 어떠한 사회봉사를 하고, 책을 1년에 몇 권을 읽는가에 있는 차이와 같은 맥락이다. 서양 사람들은 직업인으로서의 인격과 취미인으로서의 인격을 같은 비중으로 병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취미활동이란 ‘할 일 없는 여가에나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규태 선생은 이렇게 된 이유가 쌀농사와 유교 교육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즉, 동양권 사람들에게 주 생업인 쌀농사는 사람에게 여가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 일하지 않고 노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되고, 여가를 누린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악일 수밖에 없다. 동양권 사조의 주류를 이루는 유교도 놀이를 즐기는 것은 점잖은 사대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보편화시켜 여가폄훼 의식에 한 몫을 했으리라. 또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어려운 기독교의 지배도 이러한 여가배척에 일조를 하지 않았는가 싶다. 우선 주말을 온전히 교회생활에 바쳐야 하고 굶주린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도 사치와 낭비를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치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젊은이들을 보면 내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늘을 즐기려는 사람들처럼 과도하게 여가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아 오히려 걱정이 된다. 그들은 월급의 반을 투자해서라도 전문적인 운동지도를 통해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주말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음식값을 지불하고 하루 저녁을 즐긴다. 중, 장년 그룹에서도 동사무소나 구청 또는 대학평생교육원 등을 통해 취미생활을 즐긴다. 그래서 경제학자가 유화전람회를 가지거나, 대법관이 색소폰연주회를 하거나, 치과의사들이 보컬 그룹을 만들어도 별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취미생활이 우리 국민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주고 있다. 


치과의사들도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아직도 치과의사들 모임에 가면 대화의 흐름이 환자, 보험, 세금 등으로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만큼 개업환경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리라. 직업군의 스트레스에 대한 많은 보고를 보면 어김 없이 치과의사가 상위권에 올라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개원의들이 혼자서 병원을 운영해 나가는 데서 오는 중압감, 치료의 결과가 뚜렷이 노출된다는 부담감, 보험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데서 오는 자괴감 등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모임에 나가면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의 안에서 위로를 받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야를 돌리면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취미동아리가 너무나 많이 있다. 요즘은 동사무소, 구청, 대학평생교육원 등에서도 수준 높은 취미교육을 받을 수 있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여가를 즐길 시간이 없는가. 그렇다면 더구나 취미활동이 필요하다. 환자가 너무 없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취미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더구나 조만간 은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은퇴 후 생활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어떻게 준비 하느냐에 달려있다. 사람은 누구나 은퇴를 맞이한다. 나 같이 학교에 있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은퇴를 하지만 개원을 하는 사람들은 다르리라 생각한다. 우리 대학 동기들 중 일부는 오래전부터 진료시간을 줄여 하고 싶은 일들을 한다. 이것이 바로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주는 매력이다. 그러고 싶지만 인건비나 임대료 등 고정지출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時不可失,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당장 진료시간을 줄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은퇴 후 생활을 위한 준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덴탈아리랑  arirang@dentalari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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