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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이과생이 쿨하게 기부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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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이과생이 쿨하게 기부하는 방법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9.02.2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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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치과 이수형 원장
이수형(글로벌치과) 원장

세상에 남는 돈은 없다.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어디선가 쪼개서 만들어야 하는 돈이다. 까짓 거 확 그냥 재단을 설립해서 재테크도 할 겸 겸사겸사 기부도 할만큼의 갑부도 아니고, 결국 알량한 나의 주머니 사정에서 어렵사리 허용되는 소소한 금액만이 기부에 허용될 따름이다. 

돈은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눈먼 돈이 된다. 내 돈을 받아간 기부단체가 그 돈을 어떻게 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그들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우리나라의 기부 여건은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단체들이 기부금 모집과 후원 방법은 자세히 설명하지만, 그렇게 모인 기부금의 사용내역은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자연히 의혹이 생기는 구조다. 

기부자가 후견인이 되도록 매칭된 사진 속 아프리카 아이가 이름만 바꿔서, 여기저기 돌려가며 쓰인다는 루머도 있었다. 기부는 뒷전이고 운영비로 혹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탕진한다는 식의 괴담도 끊이지 않는다. 주변에 물어보면, 단체를 못 믿어서 기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 보건복지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20.8%가 기부 단체를 못 믿는다고 했다. 아니 안 그래도 하기 싫은 기부인데, 이리 좋은 핑계거리를 주다니!

최근 우리나라에도 기부단체들의 투명성과 재무안정성 등을 대상으로 평가 지표를 내놓는 평가기관이 있다. 관련 신문기사에 따르면 유일하다고도 하고, 홈페이지에는 자기들이 최초라고도 한다. 객관성을 위해 국세청 자료도 활용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기부 활성화를 위해 생긴 태생적인 한계로, 만점이 쏟아진다. 전체 8276개 법인 중 작년 상반기에 131개가 만점이었고, 3년 연속 만점이 15개, 2년 연속 만점이 40개다. 만점자가 많다는 건, 그만큼 기준이 느슨하단 뜻은 아닐까.

국내에서는 투명성 확보에서부터 장벽에 막혔으니, 해외 사례를 검토할 차례다. 해외에서의 투명성은 국내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미국은 전문 비영리기구 평가기관만 수백 개에 이르고 방만한 기부단체를 퇴출시킨다. 그리고 요구되는 기준 또한 높아서, 일례로 기부단체의 수혜자 선정과정에서 뇌물을 상납 받은 기부단체 담당자까지 파악해서 자체 공개하는 수준이다. 

해외에서의 기부의 고민은 신뢰할 단체를 찾아 나서는 단계를 넘어서 어떤 대상에게 어떻게 기부하는 것이 한정된 재화의 효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인가를 놓고 이뤄진다. 이런 효율적인 기부와 관련해, 책도 쓰고, TED 강연도 하고, 실제로 단체와 기금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 옥스퍼드대학교 철학과 부교수인 윌리엄 맥어스킬이 관련 이슈에서 유명하다. 국내에는 『냉정한 이타주의자 Doing Good Better』라는 책이 재작년에 소개됐다. 

1달러로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서는 자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의 극빈층을 대상으로 삼고, 이벤트성의 자연재해 기금보다는 빈곤구제 단체에 기부가 유리한 이유를 팩트를 바탕으로 풀어놓는다. 그리고 전시행정 성격의 사업보다 수혜자의 눈높이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기부사업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케냐에서 아이들의 학교 출석률과 성적 향상을 위해서 무작위대조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을 통해 사업효과를 측정한 결과 교과서나 교사 수보다 효과적이었던 것은 기생충 구제였다고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구충제의 의외성보다는 무작위대조시험을 통해 아이템이 선정되고 기부단체가 만들어져서 사업이 진행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적으로 Evidence-based 사고회로가 기본장착이라 합리적인 기부를 하고는 싶은데 우리나라에서는 마땅치 않을 때, 괜찮은 후보로 맥어스킬이 운영하는 ‘효율적 이타주의 펀드(Effective Altruism Funds)’를 추천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회원가입하고 기부하기까지 5분이면 충분하다. 기부 금액을 정하고, 그 금액이 선정된 단체들에 어떤 비율로 나뉘어 기부될지 결정할 수도 있다. 일종의 기부 플랫폼을 서비스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단체를 선별해야 할지에 대한 나의 고민과 부담을 대신해준다. 나에게는 편리함과 기부의 즐거움만 남는다. 

가끔 TV에서 난치병에 걸린 아이의 투병상황을 소개하며 기부를 독려하는 방송이 나온다. 그 방송을 보는 초등학생 첫째 아들은 너무 슬프고 계속 보기 힘들다며 눈이 뻘개져서 채널을 돌린다. 처음에는 옆에서 저 아이들의 상황을 설명도 해주고, 함께 보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보기 힘들다. 힘든 건 힘든 거다.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감정적으로 뒤흔드는 전략의 모금방송이다.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감정선을 건드리는 신파로 해결한다. 좀 깔끔하게 기부할 수는 없을까. 신나고 즐거운 기부 말이다. 받는 사람의 어려움을 부각시켜야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줄 때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프레임으로 옮겨갈 수 없을까. 보다 세련되게. ‘Effective Altruism Funds’에서는 최소한 신파가 설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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