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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모 원장의 마음의 창] 치과계에 이런 집단은 없는가?

중국 문명은 오랜 기간 동안 유럽 문명보다 앞서 있었다.

유럽은 중국으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쇄술, 제지술, 나침반, 화약, 운하의 수문을 획득했다. 그렇지만 경제 성장과 산업혁명이 먼저 일어난 곳은 유럽이었다.

명나라 때 대선단을 이끌고 원정을 떠난 정화는 본명이 마삼보(馬三保)이며 무슬림(이슬람 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정화는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쪽 바다에 대한 대원정을 준비해 1405년 6월 제1차 원정을 시작으로 1431년 7차 원정을 떠나 1433년 7월에 귀국했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전체 길이가 44장(丈; 약 137미터), 폭 18장(약 56미터)에 이르는 대형 선박이 포함된 함선 62척에 총 승무원 2만7800명이 탑승했다.

콜럼버스의 함대가 250톤급 3척, 승무원 88명이었던 것에 비교하면 초거대 규모의 함대였다.
이 항해를 통해 명나라와 교류가 없던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차례로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대항해의 주목적은 중국 함대가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이르는 해상패권을 수립하는 것으로 여러 나라의 조공을 촉구하여 궁정에서 사용하는 해외의 사치품을 입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480년에 중국의 명 황제는 해외 탐험과 무역을 금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무역을 계속한 상인들은 밀수업자로 언명되었고 군대를 파견해 그들의 거주지를 파괴하고 배를 불태웠다.

당시 명나라인 중국은 자원이 풍부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으니, 외부와 물자를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 했다.

무역금지가 가능한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중국의 황제는 자신과 동등한 권력을 지닌 그 어떤 경쟁자도 없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유럽에서 국가들 사이의 경쟁은 그들로 하여금 해외로 나가 세력을 팽창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유럽에서는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으며, 고급문화는 여러 요소의 혼합물이었고 세속적 지배에 견고하게 묶여 있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매우 총명했지만 그들의 총명함은 결코 통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반면 유럽 사회의 개방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고 경제적 지적활동은 계속 확장될 수 있었다.

‘갈라파고스화’ 라든지 ‘갈라파고스 신드롬’ 같은 표현은 주로 동양에서만 쓰이는 표현이며, 1차적으로는 어느 특정 시장과 관련 기업이나 기술들이 특화점에 집중하여 특수 진화되는 현상을 뜻하고, 2차적으로는 그 현상이 매우 심각해져서 호환성을 잃고 발전할 수 없는 상태로 정체되어 버린다든가 혹은 외부에서 (특히 세계표준 기술의 발전으로) 신기술이 들어왔을 때에 도태되어 버리는 등의 부정적인 상황을 일컫기도 한다.

즉, 국제적 기준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발전한 나머지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히 2차적인 의미(부정적 상태 및 도태)로는 한-일-중에서만 집중적으로 쓰인다.
굳이 일본만 집어서 말할 때는 ‘잘라파고스(Japan+Galapagos=Jalapagos)’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과 일본의 예를 들어 길게 설명한 것은 현재 치과계를 돌아보고자 함이다. 전문화를 통해서 학술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는 대단히 신중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분야를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자기 밥그릇을 키우려고 하는 사욕이 들어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가 최고 앞서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임플란트와 교정용 미니스크루의 발전이 전공한 사람에 의해서만 발전 되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AI의 발달과 로봇기술의 발달 그리고 3D프린터의 발달로 치과의 통합이 이루어지려는 대세에서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고립화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유산이 후배 치과선생님들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면 이러한 죄를 나중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 라는 책에서 집단사고의 위험을 경고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인 캐스 선스타인의 글로 마무리 하고자 한다.

“동질적 집단은 극단으로 흐르기 쉽다. 광신집단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집단을 외부와 격리시키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 정보를 불신하게 된다. 토론을 거듭할수록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성(確證偏向性)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글/김관모 원장

김관모 원장  arirang@dentalarir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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