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6:52 (금)
[이승종 교수의 칼럼] 양심
상태바
[이승종 교수의 칼럼] 양심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07.20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명예교수

얼마 전에 후배로부터 ‘탕부 하나님’이라는 책을 한 권 받았다.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는 Timothy Keller라는 목사가 쓴 책이다. 원어로는 ‘Prodigal God’인데, ‘prodigal’이라는 단어 자체는 방탕하게 낭비한다는 부정적인 의미와 아낌없이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모두 포함돼 있다.

책의 내용은 탕자의 비유로 유명한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 나간 아들에 관한 것으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미리 받은 유산을 방탕하게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보통 목사들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머슴으로라도 받아 달라는 간청과 그 간청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면서 오히려 다시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아버지의 관대함을 비유하면서 인간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을 자복하고 마음을 돌이키면 하나님이 은혜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둘째 아들과 하나님의 전통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실하게 아버지를 위해 일해 왔던 큰아들의 삐짐을 다소 다른 각도에서 분석했다.

성경의 이야기를 보면,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새 옷을 입히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베푸는데, 그것은 단순한 객지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아들에 대한 인간적인 환대를 벗어나 아들로서의 지위를 회복시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장자 2/3, 차남 1/3이었는데, 둘째는 이미 받은 자기 몫 1/3을 다 써버리고 다시 아들이 됐으니 장남의 몫으로 남은 2/3에서 또다시 1/3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차남이 흥청망청 자기 몫을 탕진하는 동안 뼈가 빠지게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섬겨온 장남으로서는 삐질 만도 하다. 그래서 아버지가 차남을 위해 베푸는 잔치에는 참여도 않고 패역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불공평한 처사를 원망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큰아들의 순종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한다. 큰아들이 놀고 싶어도 놀지 않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면서 뼈가 빠지게 일한 것은 사실은 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산을 위해서라고. 저자는 목사이기 때문에 이 책은 물론 기독교인을 위한 충고이다. 즉 실제로는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영혼의 구원을 사기 위해 교회에 와서 소리 높여 아멘만 하고, 헌금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 말하려고 한다.

책에 나오는 다른 예화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옛날 어떤 농부가 농사를 짓다가 엄청나게 큰 당근을 소출했는데, 아무래도 자기가 먹는 것보다는 임금님께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진상을 했단다. 임금은 농부의 마음을 기특하게 여겨 주변에 있는 땅을 주어 치하를 했단다. 옆에서 이것을 본 귀족 하나가 무척이나 비싼 말 한 필을 왕께 바쳤는데, 왕은 아무런 상을 주지를 않아 그 귀족은 농부의 처사와 비교하면서 불평을 했더란다. 그때 왕의 대답이 ‘농부는 당근을 나에게 줬지만, 너는 말을 너 자신에게 주지 않았느냐’였단다.

이러한 예화를 통해 저자는 한때 방탕했지만 솔직하게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 동생부류의 사람보다 겉으로는 착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고 사는 형과 같은 이기적인 부류의 사람을 구별하고자 했다.

이런 일은 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늘상 있는 일이다.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과의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물며 몇 번 보고 헤어지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는 어떠하랴. 의료인은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의료인들이 의료행위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처음부터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가까운 후배 치과의사 중에 함께 공동개원을 하던 동료가 아무 말도 없이 미국으로 가버려 곤경을 겪는 사람이 있다. 환자들은 고가의 치료를 받았는데 후속조치를 받을 수도 없고 후배에게 와서 하소연을 한단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너는 다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하니 도망간 놈과 같은 게 아니냐는 거다.

가끔 주위에서 먹튀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도 모르게 먹튀를 하는 경우를 보면 같은 치과의사로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의사의 보수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네가 성심을 다해서 치료해 주고 그만큼 많이 받는 것은 양심에 어긋난 것이 아니다. 더 나쁜 것은 적당히 받고 적당히 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해 줘야 할 것 같다 ‘받아먹고 도망가는 것만큼 양심에 나쁜 것은 세상에 없다’라고.

의료인에게 순종이란 환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