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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닥터 폭스의 기묘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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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닥터 폭스의 기묘한 강의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7.06.29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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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여름 USC 의과대학의 교수 연구 모임에서 ‘의사 교육을 위한 수학적 게임 이론의 응용(Mathematical Game Theory  as Applied to Physician Education)’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마이런 폭스 박사라는 전문가가 했다. 수많은 참고 문헌들과 최신의 게임 이론의 설명을 들은 열 한명의 청중은 강의 후 설문에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또한 그의 유머러스한 강의 스타일과 생동감 있는 예시들이 관심을 끌었다고 평가했다. 폭스 박사의 강의를 통해 이들 숙련된 의학 교육자들은 의학 교육에 게임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폭스 박사라는 존재가 완벽한 가상의 존재였다는 점이다. 사실 마이클 폭스라는 할리우드 영화배우에게 분장을 시키고 대본을 주어 철저히 암기를 시킨 뒤, 말도 안 되는 이론과 존재하지 않는 참고 문헌, 모순으로 가득 찬 설명을 적절한 유머와 함께 강의하도록 훈련을 시켰고, 이후 청중들에게 강의 평가를 시킨 심리 실험이었다. 마이런 폭스 박사로 분장한 마이클 폭스라는 배우는 실제 영화 배트맨에도 등장한 적이 있는 배우였는데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모두들 진지하게 그의 수업을 들었고 그 어느 누구도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토론까지 진행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의 논문을 읽은 기억이 있다고 답한 참석자도 있었다.

이 연구는 학생들이 수업을 들은 뒤 그 내용을 평가할 때 교육적인 내용의 전달보다는 교사의 인기도, 카리스마 등에 의해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검증하기 위해 USC 의과대학 심리학과의 Naftulin 교수진이 계획했던 것이다. 그 연구 결과는 논문으로 발행돼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청중은 강의의 내용 보다는 연자의 강연 스타일, 카리스마에 잘 현혹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에 이러한 현상을 ‘폭스 박사 효과’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실제 그의 강의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살펴보면 얼마나 그가 청산유수로 강의를 하는지 볼 수 있다. 물론 모두 연기였지만.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청중들에게 폭스 박사의 정체를 알려준 뒤에도 일부 참가자들은 수학적 게임 이론의 교육 적용에 대한 추가 참고 문헌들을 더 요청했다고 한다. 심리 실험을 위해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강의였음에도 불구하고 폭스 박사의 현란하지만 도무지 내용을 알 수 없는 카리스마 있는 강의 스킬 덕분에 청중들에게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주어진 것이다. 저자들은 이것을 그나마 긍정적인 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직접 가르쳐 주기보다 최소한 ‘무언가 배운 것 같은 환상’을 주기만 하더라도 학습 동기 부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대학 시절 수많은 강의를 들어왔고 졸업 이후에도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스터디 모임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육받고 있다.

필자 역시 강의를 많이 듣고 또 많이 하는 입장이다 보니 항상 더 좋은 강의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점차 세월이 지나고 경험이 쌓임에 따라 노련해지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과연 최신 경향에 맞추어 업데이트된 내용을 잘 정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많이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폭스 박사 효과를 생각해 보곤 한다. 멋진 강연 스타일과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강의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좋은 콘텐츠를 과학적으로 검증해 소개하는 것 역시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를 잘하는 일이란 항상 참 어려운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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