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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피터스가 말하고 섀클턴이 보여준 끔찍한 혼종의 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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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피터스가 말하고 섀클턴이 보여준 끔찍한 혼종의 이사회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7.03.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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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글로벌치과) 원장

‘초우량 기업의 조건’의 공동 저자이자, 경영의 대가로 손꼽히는 톰 피터스 박사가 최근 국내 한 비즈니스 포럼에서 임원진 구성에 대해 기조연설을 했다. 급변하는 현 시대에 유연하게 변화하고 혁신하며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 내 다양성 확보’, 특히 ‘임원진의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게리 하멜 박사의 “모든 병목 현상은 병의 꼭대기에서 나타난다”는 말을 인용했다. 15명의 이사 중에 여성 1명만 꽂아 놓고, 하위 부서에 여성들을 절반 채용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비슷한 경력과 비슷한 경영학 전공자들이 모여 앉은 전통적인 구성의 이사회는 재앙이며, 괴짜, 예술가, 여성 등을 무조건 이사회에 앉히라는 주문이다.

그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기준으로 10명의 이사회 중에 30세 이하 젊은이 2명, 빅데이터 및 IT 전문가 1명, 미친 것 같은 괴짜 1명, 디자인 전문가 1명, 벤처투자자 1명, 창업가 출신 1명은 있어야 한다. 성비로는 여성이 최소한 4명 이상이다. 이에 반해, MBA 출신과 60세 이상이 3명 이상 있으면 그 조직은 창조적일 수 없다고까지 단언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리더십을 보여준 사례로 가장 유명한 이로는 섀클턴을 꼽을 수 있다.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 정복에 있어 큰 족적을 남긴 탐험가들이었다면, 섀클턴은 ‘위대한 실패자’로 당대보다 추후에 재평가되는 인물이다.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100인 중 11위로 뽑히기도 하고 관련 서적, 다큐, 심지어 에미 상을 받은 자기 이름의 미드까지 있을 정도다.

섀클턴은 남극점을 지나 남극대륙을 횡단하는 새로운 탐험을 기획했다. 28인의 대원과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1914년 12월 5일 남극으로 떠났다. 하지만 이 배가 상륙 예정이었던 남극대륙을 130km 남기고 유빙에 갇혀버려, 결국 배를 버리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폐기됐다. 그 이후는 시속 300km의 바람과 영하 70도의 추위 속에 허기와 고통만이 가득한 초인적인 생존 투쟁이었다(나는 이 놀라운 탐험을 완전히 요약했으나, 지면의 여백이 부족하므로 생략하겠다).

최악의 궁지까지 몰린 상황에서 섀클턴은 6인의 결사대를 이끌고 구조요청에 성공해, 1916년 8월 30일 남은 탐험대 22명 전원이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이 모두 구조됐다. 비슷한 시기에 캐나다의 스테파운손이 빙하에 고립된 후 대원들을 버리고 비겁한 탈출을 했던 것과 곧잘 비교되곤 한다. 스콧이 남극점에 집착해 포기하고 되돌아갈 시점을 놓쳐, 탐험대의 전멸로 이어진 것과도 대조된다.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리더는 능력을 시험 받는다. 적대적인 여건 하에 구성원의 협조를 얻기도 어렵다. 여러 구성원들을 아우르며 살 길을 제시하고, 놀라운 결단으로 리더십을 보여주는 위대한 리더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리더가 위대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구성원들의 조합도 있는 법이다.

섀클턴은 그의 팀원을 다양한 직업과 개성 있는 사람들로 채웠다. 이는 탐험대 내에서 장교와 사병, 간부와 일반 선원 사이에 엘리트 의식과 계급의식으로 인한 갈등이 종종 문제가 되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큰 장점이었다. 남극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을 위주로, 일반 선원, 예술가, 과학자, 의사, 목수 등 직업적 다양성을 확보했다. 또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지, 노래를 시원스레 부를 수 있는지도 따졌다. 뒤늦게 밀항자를 발견했지만, 주방 보조로 채용했다(이 밀항자는 나중에 훈장까지 동등하게 받았다). 이 다양성은 절망이 가득한 상황에 낙천성과 희망을 확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날이 좋으면 개썰매 경주대회를 열기도 하고, 불침번을 서며 밤새 체스를 두기도 했다.

한편 구성원 간의 신분 차이와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해 섀클턴은 모두가 권위를 버리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의사와 장교 출신도 무릎을 끓고 갑판 바닥을 닦았다. 가죽 침낭 18개와 그보다 질이 떨어지는 모직 침낭 10개를 두고, 조작된 추첨을 통해 간부들이 대원들에게 가죽 침낭을 양보한 사례가 특히 유명하다. 섀클턴은 장갑을 잃어버린 사진가 대원을 위해 자신의 장갑을 주고, 우유를 두고 다투는 선원들에게 자신의 우유를 따라주기도 하고, 제일 먼저 불침번을 자청하기도 했다.

다양한 팀원들을 뽑는다. 그들을 자신보다 먼저 챙기고 존중하며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리고 팀원은 헌신해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성과로 이어진다. 피터스가 말하고 섀클턴이 보여준 것이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직선제 선거 후 ‘누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싶을 정도로 소위 확 ‘깨는’ 구성의 이사회를 상상해본다. 그 끔찍한 혼종의 이사회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반면 끔찍한 순종의 이사회는 창조적이기보단 그저 끔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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