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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졸박할지라도 억지로 꾸미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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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 졸박할지라도 억지로 꾸미지 말고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7.02.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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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교수

중국 明末 淸初 시대에 부산(傅山)이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서화가인 동시에 저명한 사상가이며 의학자였다.

그가 아들에게 서예를 교육하면서 ‘영졸무교(寧拙毋巧), 영추무미(寧醜毋媚), 영지리경활(寧支離毋輕滑), 영직솔무안배(寧直率毋安排)’라고 가르쳤는데 풀이하면, 졸렬할지라도 꾸미지 말고 추할지라도 예쁘게하려 말며 산만할지라도 가벼이 하지 말고 솔직할지언정 글자를 인위적으로 안배하지 말라 라고 하여 ‘졸(拙)’, ‘추(醜)’, ‘지리(支離)’, ‘직솔(直率)’이 ‘교(巧)’, ‘미(媚)’, ‘경활(輕滑)’, ‘안배(安排)’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영사무(四寧四毋)’의 심미적 요구를 강조했다.

이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에서 나온 말로 노자는 ‘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부족한 듯하지만(대성약결, 大成若缺) 그 쓰임이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크게 가득찬 것은 마치 비어있는 듯 하지만(대영약충, 大盈若沖) 그 쓰임이 끝이 없다.

크게 바른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대직약굴, 大直若屈),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하며 (대교약졸, 大巧若拙), 크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어눌한 듯하다 (대변약눌, 大辯若訥) 고요함은 떠들썩함을 이기고 차분함은 열기를 이긴다’라고 했다.

대교약졸이란 보기엔 서툴고 졸렬한 것 같지만 실은 대단한 고차원의 솜씨를 의미한다. 소박하고 졸렬한 듯 하지만 기교가 최대한 배제된 무위자연의 졸박미(拙樸美)야말로 최고의 기교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 박인비를 이야기할 때마다 대교약졸이 따라 다니는데 골프를 하는 사람들은 박인비의 스윙을 보면 모두 고개를 갸웃한다. 교과서적으로 허리가 충분히 돌아가지도 않고, 손목의 콕킹이 자연스럽지도 않고 백스윙도 3/4 정도가 될까말까 하는데도 공은 자로 잰듯이 나가니 그 말 많은 해설자들도 할 말을 잃는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역시 秋史 김정희의 ‘판전(板殿)’이다. 판전은 봉은사에서 화엄경전 목판을 봉안할 때 추사가 죽기 3일 전에 썼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서예의 대가가 쓴 글씨 같지가 않고 서당에서 갓 한자를 배운 학동이 쓴 것 같다.
 


‘板’자는 나무 木 변에 비해 우측 反 傍도 균형이 안 맞는 것 같고, 殿 자의 머리도 너무 크다. 그러나 이 글씨가 서예사에서 大巧若拙 최고의 경지로 대접 받는 것은 추사의 철학과 삶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명문 귀족 출신으로 관직생활을 했던 추사는 55세 되던 해 옥사에 연루되어 8년 세월을 제주도에서 힘든 유배생활을 보낸다. 그의 서체는 이때 완성됐다고 하는데, 유배생활이 풀린 후에도 다시 함경도로 유배를 가는 등 험난한 말년을 보내다가 생의 마지막을 과천에서 마감한다.

그래서 板殿 옆에는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는 낙관이 돼있는데, 이는 칠십일세 과천 사는 노인이 병중에 썼다는 뜻이다.

우리 주위에도 돌아보면 진국 같은 사람들이 많다. 말투는 어눌하지만 말과 행동이 어긋남이 없고 행동거지가 지극해서 태산을 보는 것과 같다.

내가 아는 대선배 한 분은 군 제대 후 처음 개업한 자리에서 한 번도 옮기지 않고 그 흔한 리모델링도 별로 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50년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이 있다.

몇년 전에 팔순을 넘긴 그 분은 지금도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고향인 충청도 예산의 자라나는 새싹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지속적으로 하고 계시다. 어떻게 보면 화려할 것 없이 소박한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온 그분의 진료실은 그 분이 가지고 있는 소박함 때문에 더 환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다.

어찌 그 분뿐이랴. 돌아보면 주위에도 소박한 진료실에서 욕심 내지 않고 동네 의사로써 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분들을 많이 본다.

몇 년이 멀다하고 자리를 옮기는 젊은 치과의사들에게 대교약졸(大巧若拙)의 의미가 무엇인지 꼭 한번 생각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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