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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400년의 고독을 담은 눈, 그린랜드 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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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400년의 고독을 담은 눈, 그린랜드 상어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6.09.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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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지난달 사이언스 지에 그린랜드 상어의 수명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392년±120년이라는 경이적인 수명으로 과학적으로 밝혀진 가장 오래 사는 척추동물에 등극했다.

1936년에 미리 표식을 해둔 그린랜드 상어를 16년만에 다시 포획해서 크기를 비교했더니 대략 1년에 0.5cm 정도 자랐다는 연구는 있었다. 성체의 몸길이가 5~6미터 정도니까, 대강 400년 내외로 살지 않겠냐는 추측에 그쳤었다.

이번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은 실은 그 방법론에 매력 포인트가 있다. 오차 범위 때문에 보통은 생물의 연령 측정에 시도되지 않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사용했다. 그린랜드 상어의 긴 수명 덕분이다. 출생 이후로 생물학적으로 변하지 않는 눈의 수정체 핵을 대상으로, 1950년대의 핵 실험으로 인해 C-14가 북극해에 1960대에 높게 나타남을 정밀한 기준점으로 삼아, 통계적으로 신뢰성 높은 값을 산출해낸 것이다.

그린랜드 상어는 차가운 북극해의 심해에 사는 상어로, 전체 상어 중에서도 손꼽히는 큰 덩치의 상어이다. 이누이트 족의 관련 설화가 있을 만큼 과거부터 친숙하게 사냥되고, 아직도 아이슬란드에서는 ‘하칼’이라는 별미 음식으로 즐기고 있다.

그린랜드 상어의 살에는 TMAO라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독성의 성분이 있어 바로 먹지는 못한다. 땅 밑에 두어 달 묻어놨다가, 수개월 동안 북극의 찬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발효시키면, 특유의 강력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으로 거듭난다. 참고로 고든 램지가 못 참고 뱉어낸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우리나라의 돔배기보다는 홍어에 가까운 음식이다.

과거에 상업적인 용도로 남획된 적도 있었으나 최근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랜 역사 동안 인류와 가까웠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연구는 부족해 많은 점이 베일에 싸인 상어이기도 하다. 관련 연구들이 흥미로워 몇 가지를 소개한다.

그린랜드 상어는 행동이 굼뜨다고 붙여진 잠꾸러기 상어과에 속하며 덩치에 비해 입도 작은 편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사냥을 하기보다는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시체들을 처리하는 청소부로 알려져 있다. 드넓은 바다 속에서 시체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고 한다. 포획된 그린랜드 상어의 뱃속에서 갑각류, 어류를 비롯해 바다표범, 순록, 북극곰, 심지어 이누이트 족의 한쪽 다리까지 발견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순록이 매년 이동하는 길목에서 지키고 있다가 물속에서 뛰쳐나와 덥쳐서 사냥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실제 야생에서는 육식동물이 사냥꾼인지, 청소부인지가 딱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궁할 때는 사냥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무리하지 않고 시체청소부 역할을 한다 정도로 추정된다.


한때 그린랜드 상어와 기생충 간의 아이러니한 관계가 유명했었다. O. elongata라는 기생충은 유독 그린랜드 상어에만 기생하는데, 각막에 기생하며 점차 상어의 눈을 멀게 한다. 통계적으로 양쪽 눈에 기생충이 있을 확률은 84.4%, 한쪽은 14.5%였다. 양쪽이 멀쩡할 확률은 1.1%밖에 안 된다.

왜 얘네 둘이 이렇게 짝을 이루고 다닐까 많은 학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 기생충이 캄캄한 심해에서 발광을 하여 상어 앞으로 먹이를 대신 유인해, 상어와 공생관계를 이룬다는 매력적인 시나리오가 제시된 적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이 기생충은 발광능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설령 그 크기로 발광해봐야 별로 유인의 효과는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야말로 눈만 파먹어 멀게 할 뿐인 일방적인 기생 관계일 뿐이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밝혀진 그린랜드 상어의 삶이란, 얼음장처럼 차갑고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에서 눈까지 멀은 채로 400년동안 떨어지는 시체나 주워먹는 외롭고 쓸쓸한 딥다크의 극치이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그래도 그린랜드 상어는 보지도 못하는 그 눈에 400년의 긴 세월을 담아두었노라고 말한다.

현대인에게 고독은 필연인 듯하다. 가을이 와서일까.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와중에도 고독감은 불쑥 찾아오지만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그린랜드 상어의 압도적인 고독 앞에서는 모두 소소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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