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14 16:46 (화)
[학생의 시각] 밥그릇 싸움
상태바
[학생의 시각] 밥그릇 싸움
  • 조현빈 학생
  • 승인 2016.08.11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국대학교치과대학 본과 3학년 조현빈 학생

 

상고와 전원 합의체 회부, 공개 변론까지 거쳐 7월 21일, 눈가와 미간 보톡스 사용이 사실상 무죄로 마무리됐다. 판결 자체에 대해선, 이래저래 생각이야 해봤지만 감히 왈가왈부할 식견은 없으니,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고 싶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논란에 대한 각 집단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의사들이 변화하고 달라질 것을 촉구한다. 더 이상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도 대법원의 판결과 같이 다른 의료인의 진료영역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

이 글은 어느 한 의사가 사석에서 홧김에 내뱉은 말... 같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7월 21일에 배포된 대한의사협회 공식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단이다.

‘의료 행위의 개념은 가변적’, ‘의약품과 의료기술 등의 변화·발전 양상을 반영해 전통적인 치과진료 영역을 넘어서 치과의사에게 허용되는 의료 행위의 영역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면허 구분의 붕괴로 규정하고, 다른 의료인의 진료 영역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영역으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내가 접하는 몇몇 매체에서도 ‘의과대학에서도 치의학 배우니까 치아 미백, 교정, 임플란트 우리도 하면 되겠네’라는 요지의 반응이 심심찮게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치과의사뿐 아니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문제나, 약사, 간호사와의 마찰 등 보건의료 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이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을 경우에는 국민건강과 타 의료직능에 대한 존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행태만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존중과 상생을 통한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오로지 의사들만의 이익을 위한 좌충우돌만을 일삼고 있어 심히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이 글은 한의사를 배우자로 둔, 의사협회에 굉장한 거부감이 있는 치과의사의 글... 같기도 하지만, 지난 4월, 의협 측에서 ‘안면미용성형’ 내용을 치과의사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건복지부에 보낸 것에 대한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성명서 중 일부이다.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대한간호협회와 공동 성명을 냈는데, 당시 한창 논란이었던 한의사 현대 의료기기 사용 논란에 대해 의협을 “자신들의 영달을 위한 행태만을 보이고 있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치과의사를 대표하는 집단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 학문적 기반이 같은 의사 집단이 아닌 한의사 집단을 지지하며 의협을 강력히 비난한 것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여러 의료계 논란에 대한 반응 중에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반응은 “결국 밥그릇 싸움이네”하는 것이었다. 각 집단 별로 국민 건강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는데 있어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를 조율하고자 하는 노력을 고작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하다니.

하지만 위의 글들에 나타난 것과 같이 같은 학문적 기반을 가진 두 집단 사이에서도 관점의 차이가 이리도 극명하고, 서로 다른 집단에 대한 존중은 희박하다 못해 서로 헐뜯는 모습을 보면서는 이들이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구나 싶었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끼리도 서로를 밥그릇만 챙기려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묘사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대중들의 입장은 어떠하겠는가.

양 집단의 목표가 ‘밥그릇 싸움’이 아닌, 매 성명서나 보도 자료에 쓰이듯, ‘국민 건강’이라면, 타 집단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보다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소통을 통해 관점의 차이를 좁힐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적절한 근거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하는 쪽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쓴 이 글이야말로 오히려 바람직한 의료 제공을 위해 노력하시는 선배님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원색적이고 당돌한 목소리에 해당할 것이다. 아는 것도 없는, 겨우 치과대학생 신분인 주제에.

하지만 성명서가 됐건 보도자료가 됐건, 그 대상은 궁극적으로 치과대학생보다 관련 지식이 적은 일반 대중이 될 것이다. 각 집단의 선생님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얼마나 고민하시고 노력하시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학생보다 더 나쁜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보톡스 말고도 치과계가 당면한 과제는 적지 않다. 당장 학생의 시선에서 느끼는 것만 해도, 전문의 제도라든지, 1인 1개소 법 논란과 같이 충분히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 수 있는 과제들이 남아있다. 이러한 남은 과제들의 해결 과정에서는 항상 고민하시는 선생님들의 노력이 ‘밥그릇’이 아닌, ‘국민건강’을 위한 것임이 충분히 인식될 수 있도록, 쉽지는 않겠지만 서로 다른 집단에 대한 존중, 합리적인 소통, 대중들을 위한 적절한 홍보가 이뤄질 수 있다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