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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발광하는 다섯 살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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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발광하는 다섯 살을 위하여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6.07.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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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조그마한 알에서 태어난 애벌레가 기어 다니다가 이윽고 번데기가 되고, 인고의 시간 후에 그것을 찢고 나와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과정. 형태와 구조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완전변태는 성장에 대한 고전적인 은유지만 늘 어필하는 부분이 있다.

트리나 폴러스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은 애벌레가 깨달음과 함께 나비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1972년에 나온 고전이지만,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의 교과연계도서이기도 하다. ‘단순히 먹고 자라는 것’을 넘어서 자기 내면의 ‘참모습’을 발견해나간다는 인문학적인 해석은 약간의 변주는 있을지언정 완전변태에 대한 교훈적이고도 확고한 프레임이다.

사실 생물학적으로만 보면, 완전변태 각 단계의 특징은 곤충의 생애주기에 따른 특화로 인한 것이다. 애벌레는 성장을 위해 소화기관에 올인해 섭식에 집중된 반면, 성충은 번식을 위해 생식기관에 올인이다. 상당수의 성충은 아예 소화기관이 퇴화되거나 제한적이어서 며칠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 신세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화려한 날개가 없는 애벌레만큼이나, 입이 없는 성충도 불균형적이기는 매한가지다.

성충에 방점을 찍은 ‘미성숙-완성’의 프레임을 벗어나 목적성에 극도로 충실하고 효율적으로 ‘분업화된 순차적인 체제’로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러한 애벌레와 성충의 관계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를 인용하기도 했다. ‘닭은 고작 달걀이 다른 달걀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애벌레는 플라톤의 이데아적인 성충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저 곤충 일생의 각 단계로써 애벌레와 성충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인식의 양팔저울에 애벌레와 성충을 각각 올려놓고 평형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잡기 위해, 빛나는 나비의 날개만큼이나 빛나는 애벌레의 이야기를 해보자. 글자 그대로 발광하는 애벌레들의 이야기다.

뉴질랜드 북섬의 투어코스 중에 하나인 와이토모 동굴에는 글로우웜이 살고 있다. 이 애벌레는 캄캄한 동굴에서 마치 별빛처럼 빛을 내며 장관을 이루는데, 실상은 먹이를 잡아먹기 위함이다. 글로우웜의 애벌레는 성충의 두세 배로 크며, 실과 점액으로 둥지도 만들고 낚싯줄을 만들어 발광을 미끼로 먹잇감을 잡아먹는다. 해부학적인 특성, 습성의 복잡성은 조그마한 생식기계로 전락한 성충을 단연 압도한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당연히 성충이 아닌 애벌레 캐릭터의 인형이 팔리고 있다.
 

 


최근 KBS에서 방영된 BBC다큐 ‘헌트’에서 소개된 헤드라이트 비틀 애벌레도 있다. 이들은 브라질 세라도 초원에서 흰개미탑의 외벽 틈새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빛을 낸다. 번식기가 되어 날개를 달고 준비한 흰개미를 유인해 잡아먹는데, 애벌레와 성충의 대비구도가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어둠이 내린 세라도 초원의 별빛과 어우러져 애벌레의 불이 켜진 개미탑은 단연 장관이다.

곤충에 대해 길게 썰을 풀었지만, 사실 사람도 마찬가지일게다. 유년기는 성인이 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팬을 쓴 제임스 매튜 배리는 “우리 인생에서 12살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별로 중요한 게 없다”고도 했다.

다섯 살배기인 아들을 보면 지칠 때까지 뛰어놀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전력으로 슬퍼하느라 하루가 부족하다. 12살 이후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5살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겠다. 그 에너지를 버겁게 쫓아가는 30대 중반의 애 아빠지만, 덕분에 유년 시절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아마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다시 돌아오지 않을 다섯 살을 위해 그 발광을 기록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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