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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치과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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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치과 응급실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6.06.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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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교수

 

하버드 의대의 인턴 시절 마이클 크라이튼은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습작 노트에 적어뒀다가 이를 영화화 하려 했으나 내용이 너무 방대해 실패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판권을 사들이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쥐라기 공원 등 그의 다른 원작들이 영화화된 후 20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TV 드라마로 제작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서 박봉과 과로로 시달리는 의사들의 인간적인 이야기 그리고 이전의 어떤 드라마에서도 볼 수 없었던 깊이 있는 의학적 내용이 수많은 팬을 만들어 냈고 결국 권위 있는 Amy상 드라마 부분 수상을 9차례나 하게 됐다고 한다.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치과를 갓 졸업한 인턴들에게도 역시 첫 치과 응급실 당직의 밤이 찾아온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순간이지만 결코 환자 앞에서 이를 드러낼 수는 없다. 모든 대학 병원이 손이 바뀌는 시점이라 모두를 긴장케 하고 때로는 공포의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 3월이다.

“OO 대학 치과병원 응급실입니다”
“네, 우리 애기가 잇몸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아서요”
“언제부터 있었나요?”
“오늘 저녁 먹이고 입안을 닦아주다가 발견했어요”
“일단 봐야 할 것 같은데 가까우시면 방문하시겠습니까?”
“네, 병원 근처니 금방 갈게요. 뚝---”

전화 끊은 지 10분도 되지 않아 젖먹이를 안고 젊은 엄마가 치과 응급실로 들어섰다.
보아하니 아직 이도 나지 않은 3~4개월 된 여아였다.

“어디에 염증이 있는 것 같으세요?”
“앞니 쪽으로 고름 주머니 같은 게 잡혀있더라고요”
“그래요? 어디 좀 보지요. 대개 치아가 썩으면서 고름 주머니가 아이들한테는 잘 생기거든요. 하지만 이도 아직 안 난 거 같은데 조금 드문 일이네요”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며 최대한 평범한 얼굴로 아이를 달래고 입을 벌리게 유도했다. 교과서에 따르면 아이들을 즐겁게 하려고 재미있는 표정을 만들면 오히려 연령이 낮은 아이들은 공포심을 느낀다고 한다.

“...”
“어떤가요?”
“아… 일단은 아이들한테 잘 생기는 고름 주머니가 맞는 것 같은데요”

Gumboil. 구강위생 관리가 소홀해 우식이 발생하고, 심하게 진행돼 소아에게 흔히 발생하는 치은 농양이 맞는 것 같았다. 단지 고름이 가득 찬 주머니가 잇몸에서 봉긋 솟아나 있는 건 알겠는데, 이걸 터뜨려줘야 하는 건지 약으로 가라앉혀야 하는 건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과서에서는 원인 치아를 찾아서 치료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치아가 없는 아이이니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뭔가. 터뜨려버릴까. 마취는 하고 터뜨려야 하지 않을까? 소독은 뭐로 하지?”

끝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이었다. 그때였다. Gumboil을 검사하고 있던 핀셋에 힘이 많이 갔는지 Gumboil이 조금 눌리는 듯했는데 그만 뚝- 허무하게 잇몸에서 떨어져 나와버렸다.

“어-랏-”
“어머, 왜요?”
“어… 혹시 애기 저녁에 우유 말고 다른 것도 먹었나요?”
“음.. 아, 아빠 먹던 강냉이 몇 알 입에서 눅눅하게 만들어서 먹였어요”

맙소사.
지금까지 잇몸에 자리를 잡고 있던 Gumboil 양상의 병리학적 구조물은 아이가 강냉이를 먹다가 강냉이를 둘러싼 갈색의 딱딱한 피막이 잇몸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으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어이없는 ‘강냉이 적출술’은 치과 응급실에서 인턴 선생 단독 집도 하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현행 의료법상 100병상 이상, 9개 진료과 전문의가 있는 종합병원에서만 응급실 운영이 가능해 국내 치과병원 응급실 대부분은 의료법상 병상 수 기준 미달로 반쪽 응급실로 운영되며, 이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병원의 적자로 이어진다.

온갖 다양한 형태의 응급 상황을 주소로 환자들은 치과병원 응급실을 찾지만, 현행 제도하에서는 점점 더 이를 해결해주기 어려워지고 있다. 환자들의 복지를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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