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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시각] 로테이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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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시각] 로테이션 후기
  • 조현빈
  • 승인 2016.06.02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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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치과대학 본과 3학년 조현빈 학생

 

우리 학교에서는 원내생이 되기 전 1주일에 한 과씩, 9주 동안 9개 과를 돌며 배우는 임상 전 실습 과정이 있는데 이를 로테이션이라 부른다. 내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로테이션 기간은 내 인생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9주였던 것 같다.

본과 2학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교실에 모인 반은 들뜬, 반은 불안한 표정의 동기들. 9주 동안 함께 할 로테이션 조를 짜는 날이었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제발 저 친구와 같은 조가 되게, 되지 않게 해주세요’하고 조금씩은, 빌고 있었으리라.

그 후 한 명씩 제비를 뽑을 때마다 보이는,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희비. 나의 절친한 동기 모 군은 그 날 내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밤엔 술을 들이부었더란다.

겨울 방학이 끝나기 2주 전, 로테이션 수업 때 필요한 기공물을 미리 제작하고, 로테이션 중에 있을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서 우리의 로테이션은 시작됐다. 열악한 몰드와 그보다 더 열악한 실력으로 제작했던 기공물들은 레지던트 선생님들께 많이도 ‘빠꾸’를 당했고, 아직도 익숙지 않은 많은 논문에 우리들은 허우적거렸다.


학기가 시작되고, 수많은 발표, 기공, 리포트, 세미나에 많은 동기가 꽃놀이 한 번 가지 못하고 학교에서 시퍼런 봄을 보냈고, 그중에서도 유독 ‘퇴근’이 늦었던 우리 조는 그 와중에서도 항상 제일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곤 했다. 우리 학교 앞 신호등은 오전 1시부터 오전 5시까지 꺼져있는데, 어떤 날엔 집에 가는 길에 “어? 오늘도 신호등 켜져 있네!” 하며 동기와 미친 사람 마냥 웃기도 했었지.

옵저베이션도 인상 깊었다. 과별로 다르지만 적게는 하루, 많게는 며칠 동안 병원에서 옵저베이션을 했는데 졸리고 다리가 아픈 와중에도 다른 조가 혼난 얘길 듣고 나면 눈을 번쩍 뜨고 진료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진료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평소엔 거의 친구 같았던 우리의 1년 위의 원내생 선배들이 환자들을 안내하고, 기본적인 차팅도 하고, 진료 전 세팅이나 마취 등을 능숙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는 그저 신기했고, 진료하시는 레지던트 선생님이나 교수님은 정말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수업 때, 실습 때 배웠던 과정들이 실제 환자에게 진행되는 것은 뭐랄까. 약간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오전 강의 시간만 되면 전날의 존경심은 내 육체의 나약함을 극복하질 못했다. 수업마다 졸음은 쏟아지고, 그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몇몇 교수님의 반응에 우리 학번에서는 결석이나 엎드려 자는 것에 적지 않은 벌금(!!)을 매기기까지 했었는데, 이마저도 우리의 생리적 욕구를 저지하긴 어려웠는지 나를 포함한 꽤 많은 동기의 생활비가 학번의 재료비로 쓰였다고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교수님 죄송합니다. 정말 너무 졸렸어요.

그리고 조금은 생뚱맞게도,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적잖이 배운 것 같다. 대학 생활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가 조별과제라고들 하는데, 로테이션이야말로 9주짜리 끝판왕 조별과제였으니 그럴 만도 한가. 열띤 학구적 토론에서부터, 감정적 갈등까지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났다. 선배들이 “로테이션하면 많이들 싸운다” 하면 “에이~ 저흰 안 그래요~” 했던 우린데. 공동 개원 잘 생각하면서 하라는 졸업하신 선배님의 말씀이 언뜻 스쳐 가기도 했다. 또 어쨌거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조를 잘 이끌어 주고 상황을 잘 중재해준 조장님께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지금의 나는 해가 떠 있는 낮에 집에 앉아 있다. 가만히 지난 9주에 대해 돌아보면,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들은 결국 이 한 마디로 귀결된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단순 계산으로는 치과대학 6년 중에 5년차니 이대로만 하면 어떻게든 치과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은 꽤 큰 착각이었던 것 같다. 당장 다음 달에 원내생이 되기엔, 얼마 후에 치과의사가 되기엔 나에게 모자람이 너무 많았다. 이를 잘 기억하고 노력해야지.

오늘 강의에 들어오신 모 교수님께서 “로테이션 끝났어요?” 하고 물어보셨다. 지난주만 해도 찾아볼 수 없던 생기와 함께 “네!” 하고 대답하는 우리들에게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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