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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간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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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간 때문이야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6.02.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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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연세루트치과) 원장

 

미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 그 뿌리깊고도 집요한 결과물. 푸아그라는 태생부터 원죄를 짊어진 죄많은 식재료다.

거위의 위장으로 옥수수나 사료를 강제로 투입하는 사육 방법인 ‘가바주’를 통해 만들어진다. 동물학대 논란으로 이미 유럽에선 영국,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등이 생산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가 생산, 수입, 유통,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가 최근 연방법과의 충돌로 한창 법적인 논쟁 중이다.

기원전 2500년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방식인 ‘가바주’는 사실상 푸아그라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장거리 비행에 대비해 지방을 축적시킨 새들의 간이 맛있음을 발견한 이집트인들이 기름진 간을 사시사철 먹기 위해 고안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다. 현대에도 푸아그라를 만드는 방법은 가바주 외에 다른 방법은 모른다. 아니, 몰랐다.

스페인의 에두아르도 소사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거위를 완전히 자연 방목해 푸아그라를 생산한다. 4대에 걸쳐 조성된 넓은 농장은 올리브를 비롯한 온갖 열매와 곡물이 풍족해 따로 사료를 주지 않아도 자연 그대로 돌아가는 ‘거위의 낙원’이 됐다. 농장의 울타리는 외부의 포식자를 대비하기 위해 바깥으로만 전류를 흘릴 뿐, 거위를 가두지 않는다. 거위들은 자유가 있지만 날아가지 않고 머무른다. 1000마리 정도의 거위가 머물고 있는데 지방을 축적하는 시기를 맞춰서 1년에 500마리 정도를 도축한다. 그 빈자리는 오가던 야생 거위들이 채운다.


이렇게 생산된 자연산 푸아그라는 거위가 먹은 온갖 허브와 열매들의 효과로 맛은 뛰어나지만 원래의 간 색깔인 회색을 띈다. 옥수수를 잔뜩 먹일 때 나오는 밝은 노란색을 요구하는 시장의 기준에 맞지 않아 저항에 부딪혔고, 이에 소사는 거위들의 간을 노랗게 해주는 씨앗을 맺는 그 지역 자생화를 농장에 많이 심어서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푸아그라의 변방인 스페인의 소사가 지난 2006년 파리의 푸드 올림픽인 ‘쿠 드 쾨르’에서 1등을 수상하고 나서 『르 몽드』 지를 비롯해 프랑스가 뒤집어졌다. 심사위원 뇌물 수수설, 스페인 정부 개입설들이 등장했고 결국은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핵심적인 논쟁은 ‘가바주’ 방식을 거치지 않은 푸아그라를 과연 푸아그라로 볼 수 있겠느냐는 점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인과는 별개로 이 푸아그라는 지속가능한 식자재, 건강한 식자재의 대표적 사례가 돼버렸다.

단적으로 이 사례를 TED 강연에서 소개한 쉐프 댄 바버가 요리해 오바마 대통령이 소사의 푸아그라를 먹었다. 고든 램지를 비롯한 유명 쉐프들이 방문하고 『타임』지나 『가디언』지 등 여러 미디어에 소개됐다.

소사의 푸아그라의 핵심 가치는 내추럴, 즉 자연이 주는 방식 그대로의 음식이라는 점이다. 그동안의 푸아그라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반복했던 그 모든 소모적인 윤리 논쟁에서 자유로워지고, 어떻게 덜 고통스럽게 거위를 먹일 것인지 수준이 차별화되기 어려운 소소한 윤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장 윤리적이다. 가장 본질에 집중했고 그 누구와도 차별화된다.

윤리적인 논쟁을 촉발하며 자신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전략은 한계가 있다. 불특정 다수에 의해 소비되는 상품군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네이버에서 공정무역이나 윤리적 소비로 검색해보라. 커피나 가방, 소품 정도가 나온다. 하지만 하이엔드 급이나 목적성이 분명한 상품은 다르다.

특히 의뢰자의 문제 해결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전문 서비스의 경우에는 핵심 가치에 가장 충실한 것이 가장 윤리적이다.

자칭 숭고한 내부고발자들이 미디어나 SNS에 저마다 내놓은 양심치과 감별법으로 한바탕 휘젓고 나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치료를 권하는 것마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덜 권하는 것이 선이고 싼 것이 윤리인가. 양심에 인증마크가 필요한가. 회색의 푸아그라를 노랗게 물들이게 될까 두려워 내 애간장만 검게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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