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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天地 寂然不動(천지 적연부동), 바쁠수록 여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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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天地 寂然不動(천지 적연부동), 바쁠수록 여유를...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6.02.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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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교수

 

물 위에 떠 있는 백조를 보면 우아하기가 그지 없지만 백조의 발은 실은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은 백조의 우아한 유영을 보면서 참 평화롭고 여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백조에게는 호시탐탐 닥쳐올 적들을 감시해야 하고 일생의 중대과업인 먹잇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바쁘게 발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天地 寂然不動(천지 적연부동)이란 菜根談(채근담)에 나오는 말로 비록 하늘과 땅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듯해도 실제로는 몹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비유로 선비의 처신을 이야기 한 대목이다. 

전문을 보면 天地 寂然不動, 而氣機 無息少停.日月晝夜奔馳,而貞明 萬古不易.故 君子 閒時 要有喫緊的心事, 忙處 要有悠閒的趣味(천지적연부동, 이기기 무식소정, 일월주야분치, 이정명 만고불역, 고 군자 한시 요유끽긴적심사, 망처 요유유한적취미) 인데, 해석을 보면 “하늘과 땅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한 듯 하지만 그 움직임은 잠시도 쉼이 없고 해와 달은 밤낮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 빛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선비는 한가로운 때라도 마음에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황망한 중에도 한가함을 누리는 고아한 자세를 가진다”라고 풀이한다.

환자를 보다 보면 종종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

치료는 생각대로 되지는 않고 그런 날은 유난히 신환이나 응급환자들이 많이 온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기구파절이나 치근 천공 등의 원하지 않는 사고까지 발생한다. 마음은 점점 더 바빠지고 일은 안 풀리고 진땀이 난다. 그럴수록 옛 선비들의 처세가 새삼스럽다.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 중 상당수가 그 동안 다니던 의사가 미덥지 않아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것 때문에 신뢰를 잃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치료를 하다가 잘 안될 때 무심코 던진 “어, 이거 오늘 왜이러지” 라는 말 한 마디가 환자를 불안하게 한다. 치과에 오래 다닌 사람들은 의사가 자기 입안에 미러 하나 넣는 것만 봐도 의사의 숙련도를 셈한다. 더구나 당황해 하거나 직원들을 큰 소리로 야단 치거나 하면 뭔가 잘못 됐구나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치료 중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의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적연부동  무   ”이다. 머리는 냉정하게 손은 기민하게 행동은 조용하게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우리나라 최고의 전투조종사들이 비상상황에 차분하게 대처하도록 훈련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은 학교에서는 이론 외에는 가르칠 수가 없다. 몸에 익히는 것은 본인의 노력이다.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처음 운전을 할 때다. 그 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자기 차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자가용을 가진 기분에 들떠 앞서가는 차들을 마구 추월을 하면서 거친 운전을 했던 것 같다.

한번은 미국에 사시는 선배를 모셔다 드린 적이 있었는데, 다 도착해서 조용히 하시는 말씀이 “Dr. Lee, 운전은 차 안에 찰랑찰랑 차있는 컵의 물이 넘치지 않게 해야하는거에요” 하신다.

우리가 환자를 대할 때 컵에 가득 차 있는 물을 쏟지 않으려는 태도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대한다면 아마 모든 환자들은 그 의사에게 무한의 신뢰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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