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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산문집 모래글씨의 사랑] 릴리와 버지니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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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산문집 모래글씨의 사랑] 릴리와 버지니아를 위해
  • 차현인 원장
  • 승인 2015.12.17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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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인(여의도백상치과) 원장

 

세상의 심장에 와있다 한들 이리도 감격스럽진 않을 것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그 작은 휴양 도시에 도착해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로 가득 찬 지구라는 원(圓)의 일부분을 싹둑 잘라서, 그의 망막 전체에 옮겨놓은 듯한 저 바다!

세인트 아이브즈(St. Ives) 간이역에 내린 그는 여행용 가방을 끌면서 바다를 향해 걸었고, 도시의 끝에 멈추어서 파도의 부서짐을 확인하려고 왼쪽 무릎을 꿇었으며, 결국 그의 요동치는 시선 속에서 자신이 쌓아왔던 지친 언어(言語)들도 산산이 흩어졌다.

릴리 브리스코는 파란 바탕의 캔버스와 싸우고 있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누런 바탕의 원고지와 싸우고 있었겠지. 누군가의 퇴폐시(詩)에서처럼 문학은 죽어야 마땅해. 철학과 신학의 시녀 노릇이나 할 바에는.

그는 노란 수선화 꽃이 무성하게 피어있는 정원을 가로질러 작은 침대가 놓인 방으로 들어간다. 들어서자마자 그는 나무 겹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쪽 구석에 짐을 풀어놓은 후, 쉴 틈도 없이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어놓고 항구가 보이는 내리막 골목길로 엉금엉금 나선다. 그의 눈은 다시 바다를 향할 것이고, 원근법의 지배를 받아 형성된 소실점 어딘가에 그가 찾던 등대가 외로이 놓여있을 것이다.

사실상 여기는 세상의 끝이 아닌가?

저물녘이 되면 그는 서늘한 마당에 나와 앉아, 겉멋이 잔뜩 들어있는 한국어의 수동태처럼 기네스맥주 몇 잔에 몸을 통째로 맡길 것이고, 그 모든 마음의 옷을 벗어 던질 것이다.

‘모더니즘의 미래를 위해 건배!

너의 아름다운 너가 되는 거야. Be Your Beautiful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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