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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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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교수의 칼럼]스토리텔링
  • 이승종 교수
  • 승인 2015.10.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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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연세대학교치과대학 보존학교실) 교수

 

일본 혼슈 북쪽에 있는 아오모리지역은 깊은 산과 아름다운 경치 외에도 사과로 유명한 지역이다. 어느 해인가 모진 태풍이 몰아쳐 수확을 앞둔 사과나무의 90%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나마 남은 10%의 사과도 모두 상처를 입어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수확을 앞두고 당한 재난에 모두 넋을 놓고 있을 때 주민 중 한 사람이 상처 난 사과에 합격사과라는 이야기를 입혀 팔아보자는 제안을 했다.

우리나라도 입시철이면 가까운 사람들의 자녀가 입시를 치를 때 엿이나 찰떡을 선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도 대학입시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곤 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는 많은 입시생의 부모들이 모진 태풍을 견뎌내고, 떨어지지 않은 ‘태풍사과’의 주술력을 선물하려고 보통 사과의 열 배나 되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입시기원 선물용으로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고 한다.
 

‘태풍사과’ 이야기는 평범한 것에 이야기의 옷을 입혀 특별한 것을 만들려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지자체 마다 상품이나 지역의 특색을 입혀 관광지나 상품을 소개하는 일이 많고, 색깔로도 특별한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중년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드는 어느 패션회사의 사장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기 회사를 소개할 때 우리 회사는 년 매출이 어느 정도이고,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고, 직원은 몇 명이라는 등의 천편일률적인 소개는 절대로 안 한다고 한다.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 회사는 중년 여성들이 옷을 고르는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시켜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라는 한 마디로 소개를 대신한다고 한다.

모든 중년 여성들의 의표를 찌른 멋진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에는 이런 상업적으로 의도된 경우와는 다르게 한 인간이 살아온 여정 자체를 보여줄 때 더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의사이자 신부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했던 이태석 신부의 고귀한 사랑실천이나, 장님이자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헬렌켈러의 교육을 위해 거의 평생을 바친 앤 설리번 선생 같은 사람의 스토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적 기업임을 내세우는 회사들은 비싼 광고면을 상품 선전 대신, 기업 이미지를 홍보하는 감동적인 카피로 채우는 것이다.

 

치과의사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지루한 일의 연속이고, 매일 비슷한 일과이고, 특별히 Exciting 한 것도 없고, 도전할 일도 딱히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치과의사의 일이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것만이 큰일인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고통,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도와주고, 잠을 못 잘 정도로 아픈 통증을 낫게 해주고, 아름다운 용모를 가꾸게 도와주고, 치과의사로서 만들 수 있는 스토리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늘 학생들에게 치과의사의 일을 크다고 생각하지 말도록 당부한다.

내가 하는 일이 크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은 오만해진다. 치과의사가 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작은 일이다. 또 몸 전체를 보더라도 아주 작은 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치과의사의 모습은 그 자체가 감동을 만든다. 우리 모두 자신 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보자. 철학이 별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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