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 29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2018-03-22     이승정 교수

바도 멋지지만 특히 이곳은 고정텐트라서 따로 텐트를 치지 않아서 좋았다. 고정텐트라도 미국 캠핑장에 설치되어 있는 인디언 텐트나 몽골텐트 같은 고정물은 아니고 우리가 사용했던 텐트와 똑같은데, 안에 야전침대가 두 개 들어가 있다. 

그래도 날바닥이 아니고 침대 아랫쪽에 짐도 넣을 수 있으니 다들 특급호텔이라고 좋아한다. 텐트들은 숲 속에 드문드문 쳐져 있어서 옆 사람들과의 소음에서도 자유롭고 정말로 깊은 아프리카 대지에 폭 파묻혀 있는 느낌이 들었다. 

텐트 문 바로 앞으로는 습지가 있는데, 멀리서 소떼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네시 반에 습지탐방이 있으니 그동안 푹 쉬란다. 이곳의 다른 좋은 점은 설거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곳에 고정텐트가 설치된 것도 텐트를 가지고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주방용품들도 가지고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 캠핑장의 식기들을 사용한단다. 덕분에 식기도 철제접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세라믹 접시에 와인도 제대로 된 글라스에 마시니 또 다른 감동이다.

집에서는 늘 그렇게 먹고 마시는데, 이제는 감사할 일도 많아졌다. 점심을 먹고도 세 시간이나 시간이 남아서 맥주도 마시고 누워서 책도 보고 낮잠도 자고 오랜만에 휴식 같은 휴식을 가졌다. 

아프리카에서의 맥주는 정말로 감로수와 같다. 나도 와인을 좋아해서 여행 중에는 늘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마시지만, 뜨거운 태양에 달궈진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역시 맥주가 제맛이다. 여행 중 내가 가장 애음했던 맥주는 남아공 산 Castle Lager, 나미비아 산 Windhoek Lager, 보츠와나 산 St Louis Premium Export lager 등인데, 그중에서 St Louis Premium Export lager가 가장 맛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초록색 병에 물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맥주를 손에 쥐면 그 시원함이 온몸에 전해진다. 

목 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여운을 가진 정말 사랑스러운 맥주다. 더구나 아프리카는 맥주값이 수퍼에서는 병당 700원 정도이고 바에서 먹어도 1000원 내지 1500원을 넘지 않는다. 여기저기 누워서 뒹굴고 있는 일행들에게 “맥주 한 잔 사줄까” 했더니, 프란지가 “좋아요” 하고 냉큼 다가온다. 카운터에 가서 호기 좋게 “Beer to every one” 하니 모두들 희색이 만면이다. 여행 도중에 느낀 것이지만 이 젊은이들 정말 훌륭하다.

우선 이렇게 어려운 캠핑여행을 택한 것도 기특하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게 눈에 보인다. 캠핑 음식이라는 것이 아침에는 오트밀, 점심에는 샌드위치로 저녁은 그런대로 잘 먹는다 해도 젊은 사람들한테는 늘 배가 고프다. 도시에 들를 때마다 수퍼마켓에 들러 먹고 싶은걸 사 먹는데, 옆 집과 비교해서 값도 알아보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절대로 사지를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이것 저것 좀 사주고 싶어도, 불편해 할 것 같아서 가끔씩 맥주나 와인을 사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돈 만 몇 천원에 이렇게 생색을 낼 수 있다니 우리나라 돈의 위력이 크긴 큰 모양이다.

네 시에 강가로 나가니 여섯 척의 카누가 대기하고 있다.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탄단다. 팀장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절대로 일어나지 말 것, 자리바꿈 하지 말 것, 사진 찍을 때 너무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지 말 것 등등. 카누는 옛날에는 통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는데, 나무가 갈라지면서 물이 들어오고 무겁기 때문에 요즘은 FRP로 만든단다. 바닥이 편편해서 잘 뒤집어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습지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깊지는 않아 보이는데, 온 수면이 수련(water lily) 꽃으로 덮혀 있다. 지금 이곳은 건기이지만 몇 달 전 우기 때 앙골라에 내린 비가 오카방가 강을 따라 내려와서 습지를 채운다고 한다. 건기가 끝나고 물이 말라 버리면 이곳의 식물들은 다시금 몇 달 동안의 휴면기간을 갖는다. 수련으로 보면 장기간의 휴면기간 사이에 번식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