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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릴륨 충격보다 낮은 수가가 “기공계 목줄 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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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릴륨 충격보다 낮은 수가가 “기공계 목줄 죈다”
  • 김정교 기자
  • 승인 2011.12.20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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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사 불만 증폭, 이제 협회가 나서야 할 때

# 1. 안녕하세요? 안녕 못해요.
추석 연휴를 넘긴 9월 중순 어느 날, 비싼 전기요금 때문에 늦더위에도 에어컨을 켜지 못한 채 부채로 땀을 들이고 있던 종로 A기공소장. 거래처인 X치과원장의 전화를 받고 두 블럭 떨어진 치과로 향했다.


숨차게 치과로 들어서는 A소장에게 X원장이 내민 것은 ‘**치과 원장님께’로 시작되는 A4 크기의 유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개업한지 올해로 22년째인 치과기공소로… 거의 모든 치과의 기공물을 직접 Pick up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연락주시면 보다 원활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

유인물을 읽어 내려가던 A소장의 안색이 ‘Price List’ 대목에 이르러 벌겋게 변해갔다.
“Porcelain 3만2000원, Laminate 5만원, Zirconia 8만원, Crown 1만8000원… ”
손을 떨며 유인물을 내려놓는 A소장에게 X원장이 한마디 던졌다.

“우리가 오랫동안 거래를 해왔지만 이런 가격에 기공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난 몰랐소. 당장이라도 거래처를 바꾸고 싶지만 그동안 정을 생각하면 그럴 순 없겠고, 지금 거래하는 값에서 좀 깎읍시다.”

A소장은 할 말이 없었다. 유인물을 보낸 기공소가 한심스러웠지만 X원장의 말에 구질구질하게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거북스러워 “생각해 보겠다”며 자리를 피해 나왔다.

# 2. 작업시간 단축과 함께 목숨도 단축
이보다 한 달 여 앞선 8월 16일 밤 11시 20분께, MBC ‘PD수첩’은 대형 네트워트치과가 운영하는 치과기공소와 그곳에서 일했다는 기공사 인터뷰를 내보내고 있었다. PD수첩은 이날 방송한 ‘의술인가, 상술인가’ 편에서 베릴륨 함유 메탈인 T-3를 사용해 포세린을 제작하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베릴륨은 석면보다 독성이 강한 물질로 국제암연구센터(IARC)에서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고, 식약청도 2009년부터 허용기준치(0.02%)를 넘는 경우 제조 및 수입금지 조치한 바 있다”는 내용이 나오자 B소장의 가족들은 기겁을 했다.

B소장의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딸은 “저게 진짜냐? 그럼 당신도 저렇게 일하냐?”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B소장은 베릴륨의 위해성에 대해서는 ZERO와 Denfoline 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기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물질을 국내 대형 네트워크치과가 사용하고 있다는 공중파 고발은 B소장의 아내와 딸은 물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고체 상태에서는 무해하지만 주조나 절삭, 연마 시 증기나 분진을 흡입하면 폐에 치명적이며, 암을 유발하고 기형아 출산 등의 우려가 있는 유해 물질이라는 보도는 치과를 이용하는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방송은 네트워크치과 기공소에서 위험한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들 기공소가 보철물을 제작하는 수량만큼 인센티브를 받는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베릴륨 함유 메탈을 사용하면 리메이크율이 줄어 결과적으로 작업시간 단축과 함께 품질도 향상된다고 덧붙였다. 작업시간을 단축시키려고 목숨을 단축시키는 셈이다.

문제의 본질은 베릴륨 아닌 낮은 수가 문제
치과계의 장기적인 불황과 함께 이번에는 베릴륨 함유 메탈이 기공사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다. 방송은 베릴륨의 위해성에 대해 지적했지만 기공사들이 느끼는 문제의 핵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기공사가 인센티브와 작업시간 단축을 위해 베릴륨 메탈을 쓴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기공 수가가 그만큼 낮다는 사실의 반증이고, 낮은 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베릴륨 메탈은 계속 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기공사들은 “방송으로 떠오른 것은 베릴륨이 아니라 수가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노원구에서 소규모 기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C소장은 “우리 기공소에서는 포세린을 지금 5만5000원 받고 있다. 이 가격도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일부 기공소에서는 이걸 3만원대에 덤핑을 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가격에 낼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조차 되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그는 “기공사 1명이 하루에 크라운 5개, 많으면 6개 만든다. 주 5일 근무니까, 한 달에 20일 일한다면 100개 정도 만드는 셈이다. 크라운 1개에 2만7000원 받는다. 100개면 270만원인데, 이걸로 인건비와 재료비, 임대료… 기공소 운영이 되겠는가?”

C소장은 기공 수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평소에도 월·화요일에는 거의 일이 없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일 일하는 게 보통이라는 그는 “명절이나 연휴 뒤에는 1주일 이상 일이 없다”며 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가격에 덤핑을 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중구의 D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이런 가격에 기공물을 낼 수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이라야 가능한데 그 첫째가 불량 재료의 사용이고, 그 둘째가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면 결국 직접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역설했다.

가장 먼저 꼽히는 불량재료는 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중국산 등 불법재료이다. D소장은 “예전에 비하면 당국의 관리가 강화됐지만 물건을 들여오는 불법 루트 역시 더욱 교묘해졌다.

오죽하면 당국에서 들여오지도, 가공하지도 못하게 했다는 베릴륨 함유 메탈이 버젓이 시장에 돌아다니고 대형 네트워크치과에서 쓰이겠나. 내가 아는 한 소장은 ‘싼 재료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내게 권하기도 했다”며 당국의 허술한 감시체계를 비웃었다.

D소장은 또 인건비와 관련 “네트워크치과에서는 아주머니까지 동원해 인건비를 낮추는데 혈안이 돼있더라”면서 “이렇게 불량재료를 쓰는데다 무면허 기사가 가공하면 기공물의 질이 떨어질 것은 자명한데, 그렇다고 환자가 이 내용을 알 리 없고, 치과에서도 기공물 값이 싸다고 진료비를 싸게 받을 건 아니니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수가, 협회의 역할 기대
기공 수가가 이처럼 낮아진 것은 기공계의 과당경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책정된 수가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은 것도 한 원인으로 풀이된다.

관악구의 E소장은 “우리가 5만원 받는 PFM을 치과에선 40만원 정도 받고 있다. 가격구조가 8:1인 셈이다. 물론 여러 가지 여건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인력구조만 생각한다면 기공소는 수거부터 모델작업, 캡, 빌드업, 카운터링, 그리고 작업을 총괄하는 소장까지 7단계, 그러니까 7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치과는 접수부터 진료까지 많게 잡아도 4명이면 충분한데 인건비 구조만 생각하더라도 8:1의 비율은 심하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치과 기공물은 기계화가 불가능한, 100% 수작업으로 진행해야 하는 ‘Hand Made’ 품목인데 작업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천구의 F소장도 같은 생각이다. 어떤 분야도 재료비가 인건비를 넘지 못하는데 유독 기공계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

F소장은 “골드 인레이 수공료가 2만원이다. 그런데 재료값은 3만원이다. 비교하기도 뭣하지만 구두 한 켤레 닦는데 들어가는 구두약값이 1000원이나 2000원 하는 경우를 봤는가? 빵을 만들면서 들어가는 밀가루 값이 빵 값의 몇 %나 되겠느냐”며 재료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공료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다.
 

기공사들의 이러한 불만의 표적은 자연스레 협회로 옮아간다. 중랑구의 G소장은 “지금 기공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공수가 현실화”라며 협회의 ‘행동’을 촉구했다.

그는 “협회장 선거철이 되면 후보들이 최우선으로 내놓는 공약이 ‘수가 현실화’였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집행부도 이 문제를 슬기롭게 풀지 못했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G소장은 특히 “협회에서 직접 행동하게 되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만약 협회에서 행동하다가 벌금 3000만원을 받는다면 우리 3만 회원이 내는 회비로 그 벌금을 충당하라. 그것이 회원의 회비를 바르게 쓰는 것”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울러 “현 회장은 이러한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히 있는 분”이라며 “임기가 더 가기 전에 역량을 발휘해 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그렇다고 협회가 기공수가에 대해 팔짱을 끼고 먼 산 바라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07년 대한치과기공사협회 대표자회가 내놓은 적정 기공 수가 관련 연구 조사 보고서가 대표적인 결과물. 보고서는 186개 치과기공소를 대상으로 2005년 12월에서 2007년 10월에 걸쳐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을 포함해 도출한 기공물 원가 산출 결과(표 1)를 담고 있다.

보고서의 제조 원가는 골드 크라운 5만 원대, 포세린 8만 원대, 올 세라믹 15만 원대.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2011년 서울 및 경기도 소재 몇몇 치과기공소의 수가 현황(표 2)을 살펴보면 그 차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골드 크라운의 경우 개당 수가는 1만8000원에서 5만원 선으로 기공소마다 천차만별이다. 표 1의 제조 원가와 비교할 때 적게는 800원, 많게는 1만7200원까지 차액이 발생한다. 즉, 아무리 질 좋은 기공물을 제작해도 원가계산상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가격에 대해 X원장으로부터 가격 인하 요구를 받은 A소장은 “연구결과로 제시한 가격 정도만 돼도 기공사가 주 5일 근무하면서 베릴륨 분진을 마시는 일도, 인센티브 때문에 밤을 새워 일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소망을 피력했다.

치과기공계 “생존권 확보 위한 기회 삼아야” 주장도
이번 베릴륨 사태와 관련, 대다수 치과기공사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공계 발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치기협과 덴탈2804 게시판을 통해 펼치고 있다.

‘현직 유디기공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유디에서 저가의 기공수수료를 받고 일하고 있는 우리를 나무라는 분들은 소장님들 아니냐”고 반문하고 “우리도 일반 기공소에서 정상적으로 일하면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면서 “우리를 같은 기공사라는 시각으로 다시 한 번 봐달라”고 주문했다.

다른 네티즌은 “방송된 기공소에서 베릴륨 함유 메탈을 사용한 것은 유디에서 재료를 제공했기 때문인데, 어떤 이유에서건 베릴륨의 실제 피해자는 위험한 물질을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직접 가공하는 기공사임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치협과 일부 네트워크치과와의 싸움에서 치과기공사만 심한 타격을 입었는데 기공사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는 치기협이 사전에 그 내용을 파악하고 대처하지 못한 것 아니냐”며 질타했다.

이밖에도 “이번 기회에 폐업 위기에까지 봉착한 치과기공계의 생존권을 위해 보철물 제작 비용을 실질적으로 현실화해야 된다”는 주장도 많은 리플을 받으며 관심을 끌었다.

이와 관련, 아내와 딸의 걱정을 듣는 B소장은 “협회 차원에서 규약을 마련하고 회원들이 스스로 자체결의를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일부 지방 소도시에서는 회원들이 모두 마음을 합쳐 덤핑 차단은 물론 치과의원의 수가인하 요구에도 절대 응하지 않는 등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을 모델로 삼아 전국 차원의 캠페인이나 궐기대회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오삼남 치기협 공보이사는 “기공료 현실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회에서 전국대표자회의를 여는 등 다각적인 의견 취합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러한 행위가 자칫 담합행위로 비쳐질 수 있으므로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신중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공소장들의 말처럼 “기공계의 소원은 어제도 오늘도 수가 현실화”이며 “수가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베릴륨 사태가 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오늘, 치기협은 기공수가 현실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현명한 해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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