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예과 2학년 시절, 당시 본과 3학년 선배가 있었다. 얼굴은 까맣고 키는 180cm가 넘는 훤칠한 형이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이유는 매사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1학기 중간고사 기간에 꽃구경한다고 남의 자전거를 끌고 나가 유급이 코앞인 ‘삼시(초시, 재시에서 60점 이하의 경우 보는 재시험, 삼시에서 60점 미만이면 유급으로 학년 진급을 못 하는 일이 발생한다)’를 앞두고도 한다는 말이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심한 의대생이나 치대생이라기보다 방랑 시인이나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어울리는 그런 형이었다. 그래도 유급이나 국가고시 탈락 없이 정규 과정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잘 살고 계신다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매사 그냥 잘 넘어가는 비법이 궁금해 “형은 시험 걱정도 안 해요? 그렇게 여유 있게?”라고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시험 보기 전까지 돌아다니면서 “시험에 뭐 나올 것 같냐?”고 모두에게 물어본다고. 그리고 겹치는 중요한 내용은 무조건 외우고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 말에 십시일반(十匙一飯)이 있다. ‘밥 열 숟가락이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뜻으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나오는 우리 속담이다.
조금씩 지식을 모으면 1등은 못 해도 의사까지 만드는 것처럼 조금씩 뭔가 도움이 되는 정보는 간절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나 치대에 입학해도 1등부터 꼴찌는 만들어진다. 모른다고 어렵다고 혼자 고민하다가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유급을 당하는 당사자가 되면 “어? 그 친구가?”라는 황당한 반응만 있을 뿐이다. 본과 1학년 진급을 못 하던 동기의 자살은 여러 동기에게 충격이었고 삶을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는 시간이 됐다.
입학 당시 지역 단위 수석 입학생이었고 말이 없는 조용한 친구여서 아프다고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동기들도 그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던 친구였다.
그 시절만 잘 지냈다면 그럭저럭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중년 아저씨가 됐을 것이고 당시의 어려움은 기억도 나지 않을 것인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남는다.
이제 현재로 시선을 돌려보도록 하겠다.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 지나 어느덧 우리 곁에 계묘년인 2023년이 찾아와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의 계획을 세워 새 출발을 다짐하는 이 시점에서 필자는 그에 보탬이 될 만한 복지정책을 제안해본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복지정책과 기관이 있는 나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관심이 없는 대부분은 모르고 지나치는 정보가 많아 정리해보았다. 새해 누군가에겐 이미 만들어놓은 ‘십시일반’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