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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궁하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아니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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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궁하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아니되어요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2.07.2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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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물로 먹는 고사리 Pteridium aquilinum var. latiusculum는 WHO의 IARC가 지정한 발암물질 중 2-B군에 속하는 독성을 갖고 있다. 2-B군은 ‘발암 가능성이 잠재적으로 의심되는 물질’에 해당하는 그룹으로, 가솔린 배기가스, 납, 아세트알데하이드 등이 포함되어있다.

1986년 일본의 연구자가 명명한 이 ptaquiloside라는 발암성분 외에도 고사리에는 체내의 비타민 B를 파괴하는 티아민 분해효소가 있어, 생으로 먹으면 각기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고사리는 백이, 숙제의 고사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식용의 역사를 갖고 있고,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일본, 중국, 대만 등 세계적으로 먹어왔다.
 

그래서 이런 위험 성분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 수천년에 걸쳐 이미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조리법이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선배들의 경험을 따르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1861년 호주 내륙을 횡단한 최초의 서양인 탐험대는 원주민들에게 Nardoo라는 전분이 많은 포자낭과를 맺는 양치식물을 소개받았다.

그들은 원주민들의 묽게 죽을 쑤는 조리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빵의 형태로 조리해먹었다.

불행하게도 Nardoo는 고사리보다 3배 이상 티아민 분해효소가 많은 식물이었기에, 이들은 비타민B 부족으로 인한 각기병에 걸려 탐험대 4명 중 3명이 죽고 1명만 돌아오게 되었다.

선배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후배만의 잘못일까. 전세계적으로 분포하며 보통 야생으로 자라는 콩과 식물인 연리초는 서양권에서는 grass pea라고 불리며 완두콩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자라기 때문에,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은 고원지대나 대가뭄이나 대기근의 시대에 식용으로 쓰인다. 초근목피의 상황에서 들에서 따다먹는 열매로 생각하면 얼추 맞다.

문제는 연리초의 콩에는 ODAP라는 신경독성 화합물이 있어 이것을 주식으로 장기간 복용하면 하지 마비와 같은 문제neurolathyrism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이다.

과거 대기근을 초래한 중국의 대약진 운동 시절에 한 성(省)에서 장기간에 걸쳐 연리초로 연명하느라 하지 마비 환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급증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현재에도 에티오피아 등 개도국에서는 10만명 이상이 겪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에 씻고 불리고, 다른 곡물과 혼합하고 묽게 끓이는 등의 안전한 조리법이 있어 스페인의 카스티야-라만차 지역에는 연리초를 이용한 전통 죽요리 gachas manchegas까지 있다.

하지만 기근, 가뭄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애초에 먹을 수 있는 다른 작물이 없는 상황에서 연리초의 독성 자체도 가뭄이 심할수록 진해진다고 하고, 물이 귀할수록 안전한 조리법을 쓰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존을 의지할만큼 주식으로 많이 먹어야하는데, 비극적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궁핍한 상황에서 보다 전문적으로 주워먹으면 되지 않겠느냐는 추론이 가능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뉴욕 식무원의 조셉 베이텔을 비롯한 13명의 과학자들이 열대우림에서 조난당했던 일화가 좋은 사례가 될 듯 하다.

미발견 동식물을 발견하고자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험난한 지역을 탐험하던 이 학자들은 베네주엘라 남부에 위치한 Cerro de neblina산에서 악천후로 인해 12일 동안 고립당하게 되었다.

디즈니-픽사 영화 ‘UP’에서 나오는 앙헬폭포, 그 깎아지른 절벽의 고산지대의 실제 배경인 동네가 베네주엘라다. 여기서는 어지간한 절벽과 높은 산으로는 명함도 못 내미는데 그 중에서도 험준한 산에 조난당했으니 과학자들은 구조를 기다리며 일단 살 길을 찾아야했다.

당시 이들은 8일치의 식량을 갖고 있었는데 12일동안 조난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해야 했다. 일행들 중 조류학자는 새를 사냥하였고, 식물학자들은 주변 식물의 줄기와 열매를 채집해왔다.

이때 뉴욕식물원에서 온 식물학자 마이클 니Michael Nee는 야생 베리를 따와서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이전에 야생 베리에 대한 주의를 들었던 베이텔만 먹지 않았다.

이후 이 베리를 먹은 학자들은 혈압이 떨어지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8시간 가량을 누워있게 되었다. 마이클은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기까지 했다. 다행히 이들은 운이 좋아 회복할 수 있었고 이 일련의 과정을 멀쩡했던 베이텔이 상세히 기록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물고 궁핍해도, 주워 먹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위험이 따른다. 그리고 비록 주워 먹을지언정 나름의 안전수칙과 법도가 있다. 본인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탈이 나면 이미 늦다.

지면상에 실릴 글이라 돌리고 돌려서 말을 하다보니 이제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그저 우리에게는 ‘땅에 떨어진 건 주워 먹지 않음’이라는 옵션이 살아있음을 언급하면서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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