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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1921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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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1921년은 아니다
  • 양정강 원장
  • 승인 2021.03.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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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기원인 창립일 논쟁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평소 같은 전공으로 친분이 있는 후배가 참으로 열심히 수집한 방대한 관련자료와 이를 근거로 한 명분을 알게 되면서다. 이어서 1981년 치협 대의원총회에서 의결한 ‘1921년 10월2일 안’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 공감하게 됐다.

일본이 1910년 대한제국의 국가체제를 강제로 해체하고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 대한제국을 ‘조선’이라 개칭했다. 바로 그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1921년 일본인들이 시작한 ‘조선치과의사회’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생일로 과연 기념할 수 있을까? 하여 1925년 한국인만으로 시작한 ‘한성치과의사회’가 대한치과협회의 자랑스러운 시작으로 하자는 주장이다. 

이 의견에 치과의사학에 심취, 석박사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후학들도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에 개최한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일에 관한 공청회’는 위 두 의견을 주제로 진행했는데, 올해 3월 4일 2차공청회에는 광복 이후 발족한 ‘1945년12월 9일 창립일’안이 더해졌다.

1차 공청회에서 1921년 창립일을 유지해도 무방한 이유로 일본인이 만든 단체라도 한반도에서 전국단위 최초 단체로 한국인(4명)도 참여했다거나, 협회 역사는 오래된 것이 좋다(4년 차이)든지, 선배들이 애써 결정한 것은 따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도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초대부터 7대까지 회장을 지낸 단체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대한’이라는 이름이 갖는 정체성을 떠올리면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2차 공청회에서 ‘1921년 안’에 대한 찬조 토론자는 주제발표를 모두 듣고 난 후에는 지지 의견이 다소 소극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였으며, ‘1945년 안’을 주장하는 이들도 ‘1921년 안’ 에는 찬성 할 수 없다고 했다. 

치협이 1982년 발행한 협회사 서론의 한 부분을 옮겨본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가 창립되고 함석태가 선임되었다. 이에 앞서 한국 내에는 일본인(日本人)들이 1909년 경 경성치과의사회를 조직하였고, 1921년에는 조선치과의사회를 조직하여 전국적인 조직체로 확장하였다. 1942년 한성치과의사회가 일본인들의 경성치과의사회에 강제 합병되지만 한국인들의 단합은 그 속에서도 이뤄 지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처럼 한성치과의사회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효시라고 기록을 남긴 치협 집행부에서 토론도 생략한 채 치협 창립 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안에 만장일치로 의결하고 구체적인 날짜는 집행부에 일임해 결정된 치협 창립일 ‘1921년 10월2일’은 수용하기 매우 힘들다. 그 때문인가 지난 2005년, 2009년과 2010년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 창립일 변경 안건이 상정됐으나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바가 있다.

치협 홈페이지에서 연혁을 보면 ‘1921.10.02: 조선치과의사회, 1925.04: 한성치과의사회, 1945.12.09; 조선치과의사회(회장 안종서), 1949.05.29: 대한치과의사회로 개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초대 총무를 지낸 안종서선생은 성수동 치협 회관에 초대회장으로 사진이 걸려있다. 창립일 찾기를 제안하고 나름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선배들의 노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이후 관련 역사적 사실을 더욱 세세히 확인한 후배들이 창립일을 변경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다 듣고 나면 결코 거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1921년 조선치과의사회 설립 당시의 배경과 일본인 초대회장은 러일전쟁 참전을 위해 조선에 주둔한 주차군 사령부 치과촉탁의로 군속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온 인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일본인 치과의사들이 수행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시작을 확인하는 작업은 분명 구분 할 일이다.

공청회 자리에서 지난 1981년 총회에 참여한 대의원 대부분이 일제 식민 지배를 경험했음에도 1921년 창립일 안에 찬동하면서 식민지배하에서도 불이익을 별로 받지 않았다는 의견을 피력하기에, 언뜻 인질들이 인질범에 감화돼 동조하는 현상인 소위 ‘스톡홀름 신드롬’이 떠오르기도 했다. 1897년 조선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변경했다.

역사가 길수록 바람직하다고 하나 조선이 대한으로, 한성이 서울로 시대에 따라 이름도 변하기 마련이다. 대한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치과의사협회의 시작은 일본이 식민지화 이후 택한 ‘조선’이나 ‘경성’ 보다는 ‘한성’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치협 이상훈 회장은 질의 응답 시간에 오는 4월 치협 대의원 총회에 창립일 변경에 대한 집행부 안은 없을 것이나 지부로부터 변경 안이 들어오면 당연히 수용하여 논의를 통해 결과를 얻을 것이라 답했다. 위 3가지 안은 모두 일정 부분 명분이 있기에 결국 선택의 문제만 남았다. 아무쪼록 대의원 여러분들의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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