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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에서 치과기공사로 산다는 것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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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에서 치과기공사로 산다는 것 ⑤
  • 홍소미 원장
  • 승인 2020.12.10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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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그럴 수 있으려면 치료 수가가 다변화돼야 한다. 치과의사가 환자한테 치료비를 높게 받을 수 있다면 기공물의 가치를 보다 높은 기공료로 인정해 줄 수 있는 여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치과의사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물건의 가격이 비싸면 비싼 이유가 있고, 싸면 싼 이유가 있다. 싼 가격으로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여겨지는데 이것은 매우 틀린 말이다.

진정한 자본주의의 특성은 비싼 것과 싼 것의 차이를 확실히 두는 것인데 대한민국의 치과의사와 환자들은 ‘싼 가격 = 정직한 진료’라는 묘한 주문에 걸려 있기 때문에 이 차이가 없다. 심지어 ‘정직함’ 마저 마케팅으로 이용하다보니 정직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낮은 치료비=덤터기 치지 않는, 양심적인 진료’라는 공식이 생긴 것이다. 

예를 들면, 임플란트 치료비 비싸게 받는 병원은 가격으로 ‘덤터기 치는’ 치과이고, 나는 환자의 편에서 원가만 받는 양심적인 치과라는 왜곡된 양심 마케팅이다. 치과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생각하도록 환자를 만든 것은 치과의사들 스스로이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싸고 좋은 것을 선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싼 것은 알 수 있지만 좋은 것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환자는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치료의 차이와 성능, 그 치과가 거래하는 기공물의 수준을 일반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판단할 정보가 없으므로 좋은 것에 대한 판단은 -전문가니까 양심적으로 하겠지- 라는 정도로 유보될 수밖에 없다.

비슷하게 잘 할 거라고 성능에 대해 모호하게 판단한 상태에서 환자에게 남은 판단 기준은 ‘가격’이다. 즉, 의사는 윤리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는 대전제 하에 싼 가격 = 합리적인 가격= 양심적인 치료를 하는 의사로 여겨지고 환자는 가성비에 의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성능을 알 수 없는 환자에게 성능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이 가격이어야 한다. 즉, 가격은 성능의 차이를 내포할 수 있도록 차별화돼야 하고, 가격이 싸면 싼 이유가 있을 것을 환자들이 알아야 한다. 환자가 싼 물건을 선택한다면 싼 이유 역시 감내해야 한다. 가격이 낮을수록 좋아하면서 질 역시 좋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환자들은 가격이 싸면 양심적인 진료를 하는 병원이고, 치과의사들은 그 가격에도 좋은 실력으로, 양심적으로 진료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낮은 가격을 치과의사들이 양심적으로 좋은 진료를 ‘해야만’ 한다는 인식은 만약 질이 안 좋아서 실망할 때 낮은 가격으로 선택한 스스로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고 치과의사의 비윤리적인 의료행위 탓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것은 상당히 왜곡된 인식이고, 치과의사들은 하루 빨리 이런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치료 수가를 차별화해야 한다.

의료 역시 싼 것은 싼 이유가 있고 좋을수록 가격이 차별화 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치과의사 역시 바닥이 없는 가격 경쟁의 늪으로 빠져 들 것이다. 

최고 전성기의 기량을 자랑하는 치과의사가 신졸 치과의사와 똑같은 가격으로 똑같은 필드에서 경쟁하는 현재 상황에 대해 필자는 많은 생각을 한다. 그 정도 연륜이 되면 신졸 치과의사들과는 다른 필드에서 일해야 한다. 즉, 많이 일해서 많이 벌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금 일해서 많이 버는 필드로 가는 것이 어떨까 한다. 

그리고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벌 수 있도록 도왔으면 좋겠다. 그 중 가장 시급한 것이 기공료의 현실화이다. 치과의사가 자신의 가치를 차별화하지 않고 많이 일해서 많이 벌고자 한다면, 모든 치과의사가 면허를 따서 죽기 직전까지 은퇴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면 결국 치과의사라는 직업은 많이 일해도 조금밖에 못 버는 직업이 된다.

치과의사가 그렇게 쪼그라들면 치과의사를 돕기 위해 일하는 협력 업종들 역시 많이 일해도 입에 풀칠만 하는 저소득 집단으로 떨어질 것이다. 즉, 기공료 현실화의 또 다른 열쇠는 치과의사가 가격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물론 지난 호 <표4>의 A급의 기공료도 높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A급 수가를 제시하는 기공소장은 별로 없으리라는 것도 안다. 거래처를 잃을까봐 무서워서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높은 예술성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불철주야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철주야 노력 하고픈 여건이 되는가? 꿈을 꿀 수 있는 여건도, 대우도 해주지 않으면서 예술을 하라고?
조성진을 길거리 피아니스트로 대우하는 격이다.

클래식 비르투오소들이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꿈을 꾸고 더 잘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노력과 예술을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더 잘하라는 경쟁을 붙이지 더 싸게 하라는 경쟁을 붙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치과기공사들에게 더 싸게 하라는 경쟁만을 붙이고 있다
아마도 이 사회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것.
너무 늦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그 귀한 손이 우리 곁을 떠나가기 전에.

결론  
현재 한국의 기공소장들은 다음과 같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1. 제도, 법령의 문제
제대로 된 사회라면 어떤 큰 변화를 감당하게 할 때 그것을 완충할 수 있는 장치 역시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이 심각한데도 후유증을 구제하기 위한 후반영도 없다. 정부 정책의 고통은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치부하는 것인가? 

기공소장들은 기공소의 운영 체계와 급여의 변화를 완충할 수 있는 그 어떤 제도적 도움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2006년으로부터 2016년까지 2배로 증가된 기공소는 치열한 경쟁을 가속화는 단초가 돼버렸다. 제도, 법적인 변화의 충격이 아무 것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것이다. 

2. 저가 강요하는 사회
싼 진료비가 미덕인 국내의 의료 환경 속에서 치과 역시 심한 가격 경쟁 속에 있다. 치과가 이런 상황이니 저가 기공물을 이용해서라도 원가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공료의 현실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기공물은 보철료의 1/n이어야 한다는 묵시적인 공식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공료를 1만 원 인상한다면 치과의사는 1xn배의 진료비를 올려야 한다는 공식이다. 그러나 치료비를 1만원 인상해서 기공료를 1만원 더 준다는 생각도 해보자(아니, 1만원 인상해서 기공료를 5000원 더 준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거대한 좋은 흐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기공료를 올린만큼 환자에게 n배를 더 받겠다고 생각하면 1만 원도 올릴 수 없지만 기공료를 올려줄 만큼이라도 치료비를 올려본다면 기공료를 현실화 하는 부담이 적을 것이다. 

3. 덤핑 기공소
적절한 기공수가는 기공사들의 삶 자체이다. 현재의 현저히 낮은 기공수가는 반드시 현실화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덤핑 기공소의 가격 영업으로 기공소장들은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덤핑 치과기공소의 악영향은 앞으로 더해질 뿐 감소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보다 강제적인 제한이 있어야 할 것이다. 

치과기공사와 기공소장은 입장이 다르다.
사실, 기공소장이 힘든 것이지 기공사가 힘들지 않다. 최근의 기공사들은 초봉부터 최저 시급을 보장받고 입사하며 과거의 무급 야근도 없다. 물론 경력이 쌓이면 급여 수준도 높아질 뿐만 아니라 파트타임으로도 가능하고 일하다가 쉬고 싶으면 그만 두고 쉬다가 재취업하면 된다.

그러므로 기공사의 현재는 과거보다 현저히 좋아졌고 경력이 올라갈수록 더욱 좋을 것이다. 2018년 이후 졸업자들의 취업 조건이 좋아진 것은 모두 현재의 기공소장들의 자의 반 타의 반 희생에 따른 것이다. 

현재를 견뎌내고 있는 기공소장들은 꿈도 꾸었던 세대이고 제대로 된 기공계의 선배들이고 기공사라는 직업이 더 좋은 직업이 되도록 희생한 사람들이며,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기공소장님들에게 깊은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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