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덕 원장의 서가의생] 키스 & 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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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덕 원장의 서가의생] 키스 & 라이드
  • 서진덕 원장
  • 승인 2020.11.1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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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 기사를 보다 ‘키스 앤 라이드’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순간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 호기심에 기사를 읽어보니, 임시정차구역(또는 환승정차구역)이라는 뜻으로 도로표지판이나 안내판에 쓰이고 있는 문구였다. 나만 몰랐던 건가 싶기도 했다가, 이제는 별걸 다 영어로 쓰는구나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그것도 공공기관에서 만드는 도로 안내판에서 ‘키스 앤 라이드’라니. 나처럼 이 표현을 모르는 사람이 표지판을 봤다면, 그 사람은 운전 중에 어떻게 행동했을까? 왜 공공기관에서 임시정차구역이라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 앤 라이드’라고 쓴 것일까?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하면서 변한 것이 있다면 한자문화권이었던 우리나라에 영어가 생활 깊숙이 들어온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와 교류하기 위해선 영어가 필요했고, 한자 문화권이던 우리나라는 익숙지 않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필요 여부와 상관없이 취직에는 영어가 필수가 되었고, 토익, 토플 점수를 얻기 위해 애썼다. 그러다보니 읽기와 문제 풀기는 되지만, 말하기와 쓰기가 잘 안되는 기형적인 교육의 모습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제는 많은 국민,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한자보다는 영어에 좀 더 익숙해져 있고, 외국인들조차 우리나라 국민이 영어를 잘하는 것에 매우 놀란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일상의 표현들을 영어로 바꾸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화나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적합한 단어를 찾기 보다는 그냥 영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많아졌다. 그리고 전문영역이라면 으레 영어 단어를 그대로 쓰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이제는 과거 한자가 곳곳에 있던 현상이 영어로 대체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어가 늘어가는 것이 좋은 것일까? 누구나 영어를 배우고 쓰려고 노력하는 상황에서 왜 한글을 쓰는 게 중요할까?

우리가 글자를 쓰는 것은 의미와 정보 전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한글이 창제된 이유를 봐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한자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어려운 백성을 위해서 였다. 한글을 쓰고 안 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로 인해 의미 전달이 쉽고 빠르게 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키스 앤 라이드’라는 표기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키스 앤 라이드’ 말고도 굳이 이걸 영어로 써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표현은 또 있다. 그 예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번역하자면 무장벽 시설이 된다. 그냥 단어만 들어서는 선뜻 의미가 다가오지 않는다. 이 외에 우리나라 말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경우도 있다. 스크린 도어. 누구나 이 시설이 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로 안전문이라고 했다면, 의미는 좀 더 다르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한다. 이 문이 생긴 이유를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문제는 꼭 영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 외에도 한자어 사용에서도 우리나라 말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경우가 있다. ‘자동제세동기’라는 표현보다는 ‘자동심장충격기’라는 표현이 누구나 알기 쉽지 않을까? 이름만으로 그 기능과 용도를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스크린 도어를 모르고, 자동제세동기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 더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환자를 보더라도 우리가 늘 쓰는 영어를 알아듣는 환자보다는 못 알아듣는 환자가 많다는 것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한글로 변환하거나 다른 쉬운 용어를 이용해서 설명하고 있다.

영어가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을 막자는 뜻은 아니다. 한글이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다는 욕구도 이해는 간다. 다만, 적어도 공공기관에서 쓰는 언어에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쓰는게 맞지 않을까.

우리 치의학을 포함한 학문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많은 외국의 학자들과 교류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영어 표현이 많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단어를 우리말로 교환하는 노력을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것이 환자의 이해를 높이고, 우리 또한 그 질환의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바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는 새로운 현상과 문화에 대해서 늘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가는데, 우리가 그러한 노력 없이 그들의 언어만 쫓는다면 수년 뒤에는 한글은 껍데기만 남은 글자가 되고 말 것 같다. 다행히도 이러한 우리글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단체가 있는 것으로 안다. 개개인 또한 작더라도 우리의 한글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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