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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이태원은 안전합니다 걱정말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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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형 원장의 오늘] 이태원은 안전합니다 걱정말고 오세요
  • 이수형 원장
  • 승인 2020.05.28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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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이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코로나 사태의 한복판에서 개원을 하고 있다보니, 조금은 찐하게 이 상황을 체감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시작은 지난 3월 지극히 평온한 날이었다. 바로 전날 보호자로 치과에 방문했던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확진자의 동선에 있던 우리 치과로 보건 당국의 전화가 청천벽력처럼 걸려왔다. 그 이후 상황은 내 손을 떠나 진행됐다. 방역팀이 출동했고 역학조사관은 CCTV 녹화영상을 확인하며 직원과 원장의 자가격리 여부를 물었다.

운명의 그 날은 그렇지 않아도 정신없던 나를 더 혼란하게 만드는 사건이 많았다. 보건 당국의 통보에 환자들의 예약을 취소하는 황망하고 부산한 상황에서 종편 두어 곳의 기자들이 막무가내로 카메라를 들이밀며 찾아왔다. 치과 홈페이지는 바로 다운됐고, 환자로 다녀간 적도 없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확진자의 인상착의를 물었다. 그래서 치과를 언제 폐쇄할 것이냐는 오지랖인지 장난전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전화가 왔다. 데스크 직원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면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응대했다. 졸업 후 몇 년 만에 동기에게 전화가 왔다. 반가웠지만 혼이 반쯤 나가있는 내게는 고맙지 않았다.

그렇게 홍역을 치르고 감염관리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내 마음가짐도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했다. “그래, 병원 경영 상황에 일희일비 하지 말자, 2020년 올해는 코로나의 해니까, 버티고 살아남기만 하자”

하지만 바닥 밑에는 지하실, 그 아래는 벙커, 땅굴이 있기 마련이다. 5월초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가 터지면서 나의 마음가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전히 이태원 코로나는 진행 중인 가운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꾸역꾸역 진료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방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임플란트가 흔들린다며 전화가 왔다. 트레핀 버를 이용해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에 사전투약 및 마음의 준비까지 마치고 오기로 하셨다. 그리고 다음주에 아버지가 올라오셨다. 그런데 웬일인지 함께 오기로 한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여쭤보니 이태원이 코로나로 시끄러워 어머니는 안 오시고 아버지만 오셨단다.

‘아니, 당장 아들은 이태원에서 치과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치료받으러 오셨는데? 다른 걸 다 떠나서 아버지와 한 집에 사는데 방어의 의미가 있나?’ 복잡미묘한 상념들이 무수히 스쳐갔다. 그래도 코로나를 조심하기로 택하신 어머니 결정을 존중했다. 사람 사는 게 뭐 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이런 아이러니가 있어야 다음 명절 때 우스개 농담거리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시덱스 행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로 여전히 불안한 가운데 몇몇 업체는 불참을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보면 시덱스를 강행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개인적으로 듣고 싶은 강연도 있으나 시덱스에 참여하는 치과의사 중에서 내가 제일 위험군일 것 같아 고심 끝에 모두를 위해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에서 흘러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지난 3월에 확진자 동선에 걸려 난리법석을 떨었던 당사자 입장에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초반에도 묘사했지만 동선에 걸린 치과를 둘러싼 상황 전개는 결코 합리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다. 딱히 도와주는 단체도, 사람도 없다. 협회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3월 초면 나름 코로나 초반이었는데 나를 통해 상황파악을 하고, 나를 도와준다거나, 다른 회원들을 위해 개선해야 할 사항을 청취하는 과정은 없었다. 일단 상황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은 고스란히 원장 몫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도 당신 배 아파서 낳은 아들 치과도 안 오시는 이 시국에 내 치과를 찾아주는 모든 환자분들께 진지하게 근원적인 감사함을 느끼며 진료를 하고 있다. 오시는 한 분, 한 분이 너무도 감사하고 소중하다. 이런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시덱스에 참여하는 치의들에게 주최 측은 큰절을 하며 감사함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설령 참여율이 저조하더라도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다 그런거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원래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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