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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원장의 말말말] 말똥과 이똥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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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미 원장의 말말말] 말똥과 이똥 사이
  • 정유미 원장
  • 승인 2020.01.2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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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키스치과 정유미 원장

내가 칼럼의 제목을 ‘말, 말, 말’이라고 한 이유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말’은 ‘말(言)’외에도, ‘말(馬)’이 있다. 2006년부터 승마를 시작했으니 올해로 15년 차다. 그리고 승마선수 생활을 시작한 건 4년 차가 됐다. 처음엔 사람보다 훨씬 큰 말 위에 올라간다는 건 겁 많은 나에게 커다란 도전이었고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쑤시고 결린 어깨와 삐뚤어진 척추를 바로 잡고, 치과의사 특유의 5도 정도 전방으로 기운 거북목 자세를 극복하려면 승마(마장마술)의 5도 정도 뒤로 기울어지는 자세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말 그대로 소위 ‘말뽕’을 맞아버렸다. 마약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마(馬)약’이었던 것이었다. 말 위에서 느낀 따스함은 정말 묘한 감정을 일으켰다.

당시엔 승마란 분야가 일반인들이 하기엔 너무 폐쇄적인 운동이었고, 국내엔 승마 관련 서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에 힘입어 마사회에서 발행된 책을 수집하고, 전국 단위의 승마동호회를 창설하고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승마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았다. 해외에서 구입가능한 승마서적은 거의 다 구매했고 승마에 관한 느낀 점과 이론에 관한 칼럼을 의뢰받아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 내용들을 모아 ‘승마따라잡기 A to Z’ 책도 출간했다. 놀랍게도 그 책은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됐다. 하지만 2쇄를 인쇄하기엔 내용도 경력도 부실하단 생각에 우선 보류 중에 있다.

승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승자와 말과의 교감능력, 그리고 기승자와 말 자체의 기량일 것이다. 그렇다면 말의 기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마체와 털의 윤기, 색상, 체고(키), 시력 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승마에는 바로 말의 치아구조에 그 비밀이 있다.

말은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공간이 하나 있는데, 이 공간이 바로 ‘낭치(wolf tooth)’이다. 말은 이 공간이 아주 크게 비어 있는데, 이 공간에 바로 ‘재갈’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낙타나 양 등의 비슷한 동물들에겐 볼 수 없는 특수 공간인 셈이다. 이 공간 때문에 재갈로 입을 제어당하면서 바로 말은 인류 역사에서 많은 희생과 함께 발전을 이끌어 왔다.

오늘날 승마는 유희종목이라 비난받기도 하지만 승마를 통한 인간의 보살핌으로 말들은 25년 이상을 생존할 수 있게 됐다. 자연상태에서 사는 말은 평균 10여 년의 수명을 갖고 있다. 자유억압과 생명연장 사이에서 수많은 논쟁이 있긴 하지만, 승마를 하면서 나를 태워주는 말을 배려하고, 말마다 다른 특성을 이해하고, 마장을 함께 쓰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에티켓을 배우게 된다. 요즘 승마장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도 바로 이 내용들이다.

승마를 하면서 나는 담대해졌고, 크고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치과에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환자나 직원들이 민감하게 반응해도 동요하지 않는 고요함을 갖게 됐다. 실내에만 있는 병원 생활에 지칠 때면, 승마를 하는 주말이 더욱 기대된다. 특히 내가 하고 있는 승마 분야는 ‘마장마술’이다. ‘마장마술’은 ‘모래 위의 피겨스케이팅’이라고 불리는 종목으로 내가 아닌 말을 훈련해 말의 고난이도의 아름다운 동작을 표현해줘야 한다.

주인공은 내가 아닌 말이다. 작은 노력이 쌓이고 쌓아 얻은 결실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전 나는 전국 대회에서 수많은 승마 선수들과의 경쟁 속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줬다. 또한 승마교관 자격증도 취득해 승마를 가르치는 전문 교관도 됐다. 

치과의사로, 승마인으로서 생활은 어떻게 보면 정말 다르다. 하지만 승마를 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내가 승마를 하면서 더 많은 인내를 갖고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고, 또 올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말 못하는 짐승인 말도 다독여주다 보니, 치과치료에 힘들어하는 환자를 달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훨씬 수월해졌다.

또한 얼마전 말의 잇몸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재갈받이가 힘들어졌을 때 나는 치과의사로 이 동물의 아픔을 이해하고 수의사와 협진해 잇몸수술을 하기도 했다. 치과의사로서 의료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승마인으로 재활승마 봉사를 하기도 하면서 전문봉사와 일반봉사의 기쁨을 동시에 경험하고도 있다. 

치과의사로서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다른 분야에 발을 담가 한번 생활해보면 서로 보완되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져 서울대학교 global MBA 정규과정을 졸업하고, 아나운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시간낭비 아니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당당히 말하곤 한다. 살아가다보면 나쁜 일이 생겨도 좋은 일은 늘 따라오고, 경험하는 만큼 작은 무언가라도 얻는 게 있다고! 우리도 우스갯소리로 치아에 있는 치태(齒苔)를 ‘이똥’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승마장에선 말똥을 치우고 말을 관리하는 일 모두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말 위에선 복장을 갖추고 기품 있고 우아하게 타 내어야 한다. 말똥도 치우는데, 이똥을 치우며 흰 가운을 입고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이 정말 편해졌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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