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리플리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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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리플리증후군
  • 조선경 원장
  • 승인 2019.10.3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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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치과 조선경 원장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된 리플리증후군은 과도한 신분 상승 욕구로 타인에게 상습적인 거짓말과 행동을 일삼고 결국에 자신마저도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현실 세계를 부정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

또한 욕구불만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욕망이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난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시대 혐오 현상이 만든 사회병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증후군은 사회적 성취욕은 크지만 실현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며, 거짓이 탄로 날까 봐 불안해하는 단순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기 때문에 거짓말 탐지기에서도 정상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들의 거짓말 때문에 심각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기도 한다.

1966년 알랭들롱이 주연을 한 ‘태양은 가득히’라는 영화는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원작을 극화해 리플리증후군을 널리 알렸다. 반항아 기질의 주인공 톰 리플리는 재벌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살해한 후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톰 리플리가 아닌 그린리프의 삶을 가로채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린리프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그의 연극은 막을 내리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그와 비슷한 유형의 사례들이 있다. ‘신씨 학력 위조사건’은 2007년 동국대학교수임용과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선임과정에서 신씨의 예일대 박사학위와 학력위조가 드러나면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켰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이 사건을 ‘재능 있는 S씨 (The Talented Ms. Shin)’로 표현하면서 국내에 리플리증후군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2014년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2008년부터 6년 동안 48개의 유명 대학교를 전전하며 신입생 행세를 했던 사람의 사연을 추적 조사했다. 그는 실제 학생의 이름을 도용하는 범죄를 저지르며 신입생 행세를 지속했다.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그가 명문대를 다닌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에 명문대 신입생 행세를 했다고 털어놨는데 알고보니 그도 리플리증후군이었다.

2015년에 미국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한 여고생이 스탠포드와 하버드 대학에 동시 합격하고 스탠포드와 하버드 대학을 각각 2년씩 다닌 후 원하는 학교에서 졸업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는 기사가 소개됐다. 그녀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과 함께 아침방송에 출연하기도 했었는데 취재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고, 후에 그의 부모는 그녀가 리플리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최근에 온갖 권력형 비리 혐의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법무부장관임용청문회에서 한 야당의원이 후보에게 리플리증후군을 아느냐는 질문을 한 후에 이 질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졌고 지인이 착하기까지 하다고 추켜세운 우리나라 최고대학의 법대 교수로 이 정권 초기부터 권력의 실세로 있던 분이다. 청문회에서 9가지 의혹이 제기됐고 그 이후에도 양파처럼 까도 까도 의혹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본인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후보를 사퇴하지 않았다. 교수로 재직중인 그의 부인은 표창장을 위조하고 고교생을 의학논문 제1저자로 만드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두 자녀를 명문대에 보냈다는 의혹과 공직자윤리법에 위배되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의혹이 혐의로 들어나자 중환자 코스프레로 세간을 우롱하고 있다. 지난 정권까지는 공천됐던 고위공직자의 의혹이 드러나면 본인이 사퇴했었는데 이분은 검찰에서 들어난 모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사퇴도 하지 않았고 대통령도 의혹은 의혹일뿐이라며 그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조차 단순한 모함일 뿐 그에게 혐의가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 대통령탄핵 촛불집회 이후 최대인파가 그의 사퇴를 외치며 광화문에 운집했으며,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올곧다고 정평이 나있는 검찰총장의 조사로 혐의가 들어나면서 청문회 때 리플리증후군이 왜 거론됐는지 조심스러운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플리증후군은 스스로가 본인의 현재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감상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길고, 정신과 치료를 통해 진정한 내면의 심리를 정확하게 드러내야 하므로 완치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분도 거짓으로 이룬 모래성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고, 가족 구성원들도 현실을 직시해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 사회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고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한 구조로 변했다. 또한 실업률이 역대 최고에 육박하며 취준생이 철밥통인 공무원시험을 위해 노량진 고시원으로 몰리고, 자녀의 취업을 위한 권력자의 취업비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기도 있다.

이번 사태를 뒤집어보면 거짓에 의한 현실을 진실로 믿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이 그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그들의 뻔뻔함을 욕하기보다는 이 사회의 책임 있는 분들의 반성이 우선돼야 할 것 같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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