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형 원장의 오늘] 결정적 순간에 Fail safe하게 대처하기
상태바
[이수형 원장의 오늘] 결정적 순간에 Fail safe하게 대처하기
  • 이수형 원장
  • 승인 2019.07.25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치과 이수형 원장
이수형(글로벌치과) 원장

인생을 살다 보면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나 발생 직후 찰나의 첫 대응이 이후의 모든 것을 가르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필자는 처자식과 장인어른, 장모님을 모시고 인천공항에서 돌아오는 인천대교 위에서 1차선 주행 중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다행히 관성 주행 상태로 차선을 변경해 갓길까지 대는 데에 성공했다. 그때 몇 초만 더 당황했어도 길 위에 서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아찔하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원치 않는 상황으로, 순간적인 대처를 요구하는 사건이 터지는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어디 기계나 장비의 고장이 예고하며 발생하던가. 그래서 공학이나 산업 쪽에서는 ‘고장이 발생해도 그 이상 피해가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대응’을 ‘Fail safe’라고 정의해 항상 염두에 둔다. Fail-safe는 Water-proof처럼 실패로부터 안전하다, 혹은 실패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실패를 해도 안전해야 한다는 뜻이고, 사전준비보다는 사후방침에 방점을 둔다. 

항공기 엔진은 대표적인 ‘절대 고장 나면 안 되지만 늘 고장을 염두에 두는 물건’이다. 1916년 세계 최초의 여객기이자 세계 최초의 4발기인 ‘일리야 무로메츠’가 개발될 당시만 해도, 엔진은 툭하면 고장 나기 일쑤였다. 무로메츠는 만일에 대비해 날개 양측에 2개씩 총 4개의 엔진을 달았고 꼬리날개를 키워서 설령 한쪽의 2개가 모두 고장 나도 어느 정도 비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요즘은 엔진이 한 날개당 1개씩인 쌍발기가 대세인데, 한쪽이 고장 나도 일정 시간 비행이 가능한 것은 기본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EDTO라는 국제안전규정에 따라 엔진 중 하나가 고장 나도 비행 가능한 그 한정된 시간 내에 회항할 수 있는 공항이 있도록 항로를 무조건 짜야한다.

플랜B가 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배수의 진은 현실에서 위험천만한 전략이다. 아무리 완벽을 기해도 예상치 못한 사건은 터지기 마련인데 그 와중에도 자동차는 달려야 하고, 비행기는 날아야 하고, 사람은 살아야 한다. Show must go ON! 악재가 터졌을 때의 대응 방법론을 알아보기 위해서 게임 분야에서의 사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옛날 PC게임들은 애초에 초창기인데다, 하드웨어적인 한계로 인해 툭하면 에러가 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처럼 저사양에서도 매우 안정적인 게임도 있었지만, 조금만 그래픽이 현란하거나 복잡한 게임들은 멈추거나 튕겨지기 일쑤였다. 이때 곧이곧대로 오류 화면을 보여주는 건 하수다.

고전 게임인 ‘윙 커맨더’에서는 한창 게임을 하다가 튕겨져 나가게 되면, 오류메시지 대신 게임을 플레이 해줘서 고맙다는 메시지가 화면에 떴었다. 순간의 화를 기민한 저자세 대응으로 삭히게 만들어주는 전략이다.

비슷하게 닌텐도64의 ‘뉴 테트리스’에서는 오류 화면 대신 게임에서 사용 가능한 치트 코드를 화면에 띄웠다. Fail을 경험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바꾸기 위한 대응이다. 

게임의 에러가 하드웨어를 다운시켜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Fail-safe room’이라는 전략도 있다. 에러가 나도 에러창을 띄우는 대신에, 에러인줄도 모르게끔 그냥 비밀 스테이지로 옮겨버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고슴도치인 ‘소닉3D’ 게임에서는 게임카트리지 단자의 접속 에러가 나면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게임의 스테이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비밀 스테이지로 옮겨버린다. 젤다를 구하기 위해 매번 링크가 고생하지만 게임 이름은 늘 젤다인 ‘젤다의 전설­신들의 트라이포스’라는 게임에서는 ‘훌리핸의 방’이 있다. 주인공 링크가 다른 방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기술적 문제가 일어나게 되면 훌리핸의 방으로 옮겨져 게임을 속행하게 한다. 그야말로 Game must go ON!

앞서 말했던 인천대교의 갓길은 정상 주행하는 데에 실패한 차량들을 위한 Fail-safe room의 역할을 한다. 그 날 갓길에 차를 대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려고 뒤적거리는 순간, 어느샌가 순찰차가 와서 바로 상황을 확인했다. 알고 보니 CCTV로 실시간 관리하고 있었고, 마침 바로 뒤에서 순찰을 도는데 낌새가 안 좋아서 바로 뒤쫓아 왔다고 한다. 추가적인 사고를 방지하고 바로 견인차를 호출해 조속히 상황을 처리하는 대응 시스템이 인상 깊었다. 

실패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경험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전환시켜주는 것은 좀 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일이다. 감사 멘트나 몇 줄의 치트 코드처럼 소소한 것들로도 충분할 수 있다.

견인차에 올라타기 전 필자는 긴박하게 가족사진을 제의했다. 덕분에 2016년 12월 31일 바닷바람이 매섭게 추웠던 인천대교 갓길 위에서 경광등을 배경으로 당시 5살이었던 아들과 장모님, 장인어른께서 애매하게 웃으시며 찍은 사진을 건졌다. 견인차에 앉아 돌아오는 길에 온 가족들의 대화 주제는 ‘사고의 충격성’이 아니라 ‘그 와중에 기념사진을 찍다니’였다. 아들은 핸드폰 사진을 보며 대단한 모험이라도 한 것 마냥 신나게 떠들어댔다. Fail이 다시없을 이벤트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술 트렌드
신기술 신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