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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나는 왜 행복해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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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철 교수의 기묘한 이야기] 나는 왜 행복해지고 싶은가
  • 박정철 교수
  • 승인 2019.06.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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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치과대학 치주과학교실 박정철 교수

요즘 미국의 초등학생들은 집에 가서 숙제를 할 때 누구랑 할까? 엄마? 아빠? 형? 모두 아니다. 정답은 바로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 알렉사(Alexa)다.

“헤이, 알렉사”라고 부른 뒤 달까지의 거리를 물어보면 상큼한 목소리로 384,400km, 어쩌고 저쩌고라고 답을 해준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저녁 준비하느라 바쁘니 저리 가라고 이야기하고, 아빠에게 물어보면 야구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그런거 몰라라고 하며, 형은 숙제는 그만하고 게임이나 하자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알렉사는 다르다. 하루 24시간 365일 언제 어디서나 아이가 못 알아 들었다면 백번이고 천번이고 되풀이해서 이야기해준다. 사람에게서는 기대할 수 없는 자상함이다. 게다가 알렉사의 지식은 정확하기까지하다.

2017년 미국 미국심장협회·심장학회(AHA·ACC)는 고혈압의 기준을 기준 140/90에서 130/80으로 낮추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주변에는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꽤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열심히 찾아보지 않고서는 기준이 바뀐 것을 모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면 최신 정보를 검색해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 그러니 숙제를 할 때 ‘What’에 대한 공부는 사람과 하는 것보다 인공지능이랑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도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교실 뒤에 인공지능 스피커를 비치해 두고 아이들이 궁금한 게 있으면 뒤로 가서 스피커에게 물어본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에게서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What’이 아닌 바로 ‘Why’와 ‘How’다. 만일 어떤 고혈압 환자가 있는데 운동도 하고 약도 열심히 먹는데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가정하자. 이 환자는 왜(Why)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이 환자를 어떻게(How) 치료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공지능에게 배울 수 없는,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인 ‘Why’와 ‘How’인 것이다.

그런데 혹시 만일 ‘Why’와 ‘How’ 중에서 하나만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21세기북스)』이라는 책이 있다. 반평생을 행복에 대해 연구한 행복 연구의 거장은 놀랍게도 ‘How’보다는 ‘Why’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알다시피 이 세상의 정말 많은 책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저마다의 비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욕심을 내려놓고 느릿느릿 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런 책들을 많이 읽어봤지만 딱히 행복해지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해지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선이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그 방법, ‘How’를 찾고 있는데 그 누가 우리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말했던가? 서은국 교수는 되려 우리 인간은 왜 행복감을 느끼고, 왜 행복감을 추구하는지의 왜(Why)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답으로 우리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고 있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꿀을 모으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우리 인간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행복감을 추구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곧 심리학적으로 적응돼 리셋이 되버리는데, 우리는 다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이성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우리는 살아 남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 했던 이론인데 듣고 보니 참으로 타당한 것 같다.

이번 주말에 어떻게 놀아야 행복할까?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이렇게 ‘어떻게’에 대해서만 열심히 고민해 왔는데 내가 ‘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일까, 왜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것일까를 되짚어 보니 결국 먹고 살고 번성하기 위해 행복감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서은국 교수는 책의 맨 마지막에 두 연인이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사진을 제시하며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군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연을 정확하게 파악한 해설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행복의 파랑새를 찾느라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차라리 ‘생존’과 ‘번성’에 충실해 오늘 저녁 가족들과 짜장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이 훨씬 유익한 고민인 듯하다. 예전 광고에 나온 빨래 끝~이라는 말처럼 고민 끝~이라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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