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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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 원장의 감성충만] 어른
  • 조선경 원장
  • 승인 2019.05.0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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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치과 조선경 원장

내가 근무하는 치과 근처에 버닝썬이라는 클럽이 있다. 특급호텔에 위치한 버닝썬은 밤이 되면 럭셔리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모여드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경호원이 클럽 출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나 같은 중년이나 의상과 외모가 수준 이하이면 출입할 수 없다고 한다. 버닝썬에서 벌어진 사건이 게이트로 번지게 되면서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사건은 2018년 11월 24일 버닝썬을 찾은 김씨가 성추행 당하던 여성을 보호하려다 집단 폭행을 당하며 시작된다. 

김씨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심한 상해를 당하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이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억울했던 김씨는 인터넷에 호소문을 올렸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구대 폭행 영상까지 공개했지만 세 명의 여자들에게 성추행범이라며 역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고소인 세 명 모두 버닝썬과 연관된 인물들임이 밝혀졌고, 버닝썬에서의 영상공개로 불법 약의 사용과 성폭행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버닝썬 내부의 범죄와 권력층의 유착 의혹이 불거졌고 아이돌 출신 연예인의 성접대 의혹이 드러났으며, 단톡을 공유한 연예인들의 추잡한 불법 동영상 촬영과 음주운전사고의 은폐가 알려져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만약 김씨가 집요하게 사건을 밝히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강남 한복판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경찰이 있다는 사실과 TV에 출연하는 잘 알려진 연예인들이 골프 도박을 벌이고 성관계동영상을 공유하며 죄의식 없이 즐겼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돈이면 뭐든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권력의 한 끝자락만 잡고 있어도 파렴치한 범죄를 아무도 모르게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들을 탓할게 아니라 그동안 귀감이 돼야 하는 어른이 잘못 행동하고 잘 가르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됐다.

얼마 전 장관 임명청문회가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없다지만 청와대 인사검증을 통과했다는 인사들이 하나같이 흠투성이인 걸 보고 많이 놀랐다. 그들 중에는 그동안 국회에서 정의를 부르짖으며 불법에 대항하고, 정부의 불의함에 눈물을 흘리며 밤샘 필리버스터를 했던, 심지어 탄핵을 이끌었던 청문회에서 활약을 한 후보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도 별반 다를 게 없는 걸 보고 많이 당황스러웠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문제가 됐던 불법은 오차범위 내의 적법이라는 논리고, 청와대에서도 후보 중 가장 나은 인사라고 하는 걸 보면 불법이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인가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특혜를 누릴 수도 없고 작은 잘못일지라도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데, 그 정도의 배포는 있어야 요직에 오를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성장할 때 불철주야 수고하셨던 어른들이 계셔서 우리들이 이만큼 잘 살 수 있게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고도성장으로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돈이면 다 된다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기주의가 만연한 것도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어른들의 책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어른을 보면 공경하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나이든 사람을 인지력이 떨어지는 재활용품으로 여기며 어른들의 말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이야기로만 듣는 지금 사회현상을 아이들의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또한 흥부전의 놀부는 경제력과 자금을 운용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과 해가 되는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데 비해 흥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하는 인물로 해석되는 걸 보면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며 손해를 보더라도 돌아가라던 선인의 말씀을 생각할 때 격세지감을 느낀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섰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라 여길 수만은 없다. 만 65세가 되면 경로증이 나오고 국가에서 인정하는 노인이 되지만 노인정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정년을 하고도 쉬기에는 너무 젊어서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60세가 넘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할머니라 불렀던 예전과 달리 외모나 차림새가 젊은 사람을 능가할 만큼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요즘 어른들은 노인이라 불리기를 싫어하면서도 경로증 혜택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존경받는 어른은 자기 말에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하지만 자기 말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시인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름 열심히 살아왔지만 잘못된 결정으로 땅을 치며 후회한 일이 허다하고 성급한 판단으로 일을 그르친 적도 있으며, 생각 없이 무심히 던진 말로 가까운 사람에게 오래 남을 상처를 입힌 적도 있다. 지금도 혈기를 부리고 어떤 결정이 잘한 결정인지 고민하며 자녀들의 문제에는 대책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걸 보면 아직도 어른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다. 예전에 아버지는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며 내가 많이 힘들 때 함께 아파하며 바른 길을 알려주셨다. 그때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며 바른 조언을 해 줄 어른이 내 곁에 한 분도 없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 나중에 내 자녀들은 나의 조언이나 도움을 필요로 할까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이라도 어른이 되는 연습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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