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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누더기 대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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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누더기 대기실
  • 윤미용 기자
  • 승인 2012.08.1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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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보건소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다. 봉투 안에 꾸겨진 인쇄물 제목은 ‘환자의 권리와 의무’. 소위 최근 액자법이라는 내용으로 알려진 게시문이다. 수정 전 법에 따라서 제작이 되었는지 가로 30센티미터·세로 50센티미터 크기로 이 규격대로 파는 액자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고심 끝에 인터넷에서 A4 사이즈의 대체 문을 찾아 접수대 구석에 끼워 놓았다.
근래 2~3년간 병원 대기실을 보면 우리 의료계를 포함한 사회의 현실을 알 수 있는 듯하다. 세무서에서 날라온 현금영수증 스티커가 2개이고, 구청에서 준 금연시설 스티커도 있고, 비보험수가 게시물에다가 작년 10월부터 시행한 개인정보보호법 관련규정도 있다. 여기에 규격도 맞지 않고 이상한 디자인의 이 게시물까지 붙이려고 보니 대기실이 누더기 같다. 수년간 의료산업 총 매출을 합한 금액만큼의 건설 사업에 혈세를 퍼붓다가 누가 봐도 뻔히 포화 상태의 의료시장에 이상한 공급 추계를 빗대어 의대 정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하는 정부. 왠지 무언가 해야만 할 것 같은지 자꾸만 병원 안에 이거 저거 강제로 붙여야 한다고 하는 정부. 이런 정부가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다.
20세기에 들어 민간의 자연적·자주적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이를테면 국민복지 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역할이 커지고 비대해진 정부가 민간부문을 통제하면서 경제의 활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자 20세기 후반에 들어 다시 작은 정부론이 등장한 바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레이건, 대처 정부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 영국보다 뒤진 건지 모르겠지만, 그저 작은 병원의 대기실을 쳐다보면 자꾸만 ‘작은 정부’와 그에 따른 경제의 활력이 생각날 따름이다. 불필요한 지방자치제의 시행에 따른 낭비와 아직은 체계화 되어 있지 않은 복지 지출의 증대, 그리고 민간 산업에 대한 쓸데없는 간섭은 나라 전체의 성장 동력을 낭비할 따름이다. 지난 봄부터 근처 치과들뿐 아닌 다른 병원들 모두 불경기를 호소한다. 경기가 좋은데 활활 불을 지펴주는 정책은 민간에서도 환영을 하지만, 지금 같은 경기에 저런 정책은 불필요한 신경전을 유발할 따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응급실 당직법 등이나 치과가 선제적으로 포함된 포괄수가제 등을 살펴보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얼마 전 어떤 공무원의 트윗을 보니 ‘요구가 없는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정책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국책기관의 제반 논리 연구가 선행됩니다. 왜 의협은 제반 논리를 만들어서 대응하지 않고 주장만을 합니까?’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치과계에도 와 닿는 말이다. 한 해 수도없이 많이 만드는 치의학 논문의 1/100만이라도 관련 정책 연구에 매진하고, 국책기관에 연구를 의뢰하여 정부 측 주장의 대응 논리를 만들자. 현재로써는 이 방법만이 누더기 진료실을 깔끔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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